[정책에세이] '애 낳으면 대출빚 탕감' 그냥 버리긴 아까운데…

입력 2023-01-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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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기자간담회에서 출산정책의 하나로 제안한 헝가리형 ‘출산 시 대출원금 탕감’이 하루 만에 대통령실의 반박으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헝가리는 초혼 여성에 한화 약 4000만 원을 저리 대출해주고, 1자녀 출산 시 이자, 2자녀 출산 시 대출원금 일부, 3자녀 출산 시 대출원금 전액을 탕감해준다. 이 제도를 한국에 도입한다면 대출액 상한선은 한국과 헝가리의 소득 차이를 고려할 때 1억 원 내외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실정엔 안 맞는다. 한국은 수도권 쏠림이 심하다. 출산을 조건으로 한 금전적 지원은 ‘인식’ 차원에서 수도권 진입장벽을 낮춰 비수도권 청년들의 수도권 유입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그런데 막상 청년들이 수도권에 진입할 경우 정부 지원 만으로 결혼·출산이 어렵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인식과 현실의 차이다. 이들이 비수도권에 남았더라면 진작에 결혼·출산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정책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우려가 크다.

다만, 이런 출산정책을 제안하게 된 배경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 부위원장은 “청년들이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득·자산이 왜 부족하게 됐느냐다. 지금도 지방 소도시엔 전용면적 84㎡(옛 33평) 기준으로 1억 원 안팎의 아파트가 널렸다. 기반산업 붕괴로 최근 20~30년간 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한 충북 제천시, 전북 익산시 등에선 전용면적 59㎡(옛 24평) 아파트를 5000만~6000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이 경우 현금 2000만 원만 있으면 4000만 원을 정책자금(보금자리론 등)으로 대출받아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30년 만기 시 원리금은 월 20만 원을 조금 넘는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지방을 떠나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출신지역에 머물 때보다 소득이 대폭 증가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대다수는 수도권에서도 저임금에 시달린다. 반면 자취방 월세 등 주거비용은 급증한다. 이는 가처분소득 급감으로 결혼·출산 포기로 이어진다.

결국 소득·자산 부족을 이유로 한 청년들의 결혼·출산 포기 문제는 수도권 쏠림 완화로만 해결할 수 있다. 헝가리형 출산정책도 이런 관점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금융·재정 지원을 광역시를 제외한 비수도권에 집중하고, 공동화한 구도심에 상업·문화·여가시설을 공급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다. 대신,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한 출산장려금 등도 일정 부분 정리가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헝가리형 제도를 전면 도입하는 것보다 재정 부담도 덜 것이다.

당장 헝가리형 정책을 도입하는 건 시기상조일 수 있다. 자산 형성을 목적으로 한 출산, 월세 가구 소외, 여성의 출산 도구화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그래도 논의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꼭 헝가리형 정책이 아니더라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대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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