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제주도 변호사 살인사건’과 관련해 ‘제보 진술’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만으로는 사실을 입증할 정도의 신빙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12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살인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A 씨 사건을 무죄취지로 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1992년 제주도에서 이승용 변호사가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경찰은 광범위한 수사에도 그렇다할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묻히는 줄 알았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가 있다. 2019년 폭력 범죄단체 ‘유탁파’에서 활동해온 A 씨가 자신이 유 변호사 살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지금은 사망한 유탁파 두목 백모 씨가 피해자를 혼내주라는 지시를 해서 친구인 손모 씨와 상의해 준비했다”며 “상해만 가하려했는데 손 씨가 혼자서 실행하다가 일이 잘못돼 피해자가 사망했다. 손 씨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201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취지로 제보 진술했다.
검찰은 사건을 재수사한 뒤 ‘살인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A 씨가 손 씨와 공모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본 것이다.
1심은 A 씨를 무죄로 판단했다. A 씨의 제보진술은 신빙성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살인의 고의성 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원심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제보진술의 신빙성은 물론, 범죄 현장의 상황과 피해자의 상처 부위‧내용, 제보진술 내용 등을 종합해 손 씨의 살인의 고의를 인정했다.
반면, 대법원은 살인죄 부분에 대한 증명이 부족했다며 무죄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그 정도에 이르지 못하면 유죄가 의심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를 혼내주라고 지시했다던 백 씨가 그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있었던 점에서 A 씨 제보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특히 A 씨의 제보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나 구체적 정황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손 씨가 피해자를 살해한 뒤 3000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이에 대한 정황증거도 없고 돈을 어디에 보관했는지 등 진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