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란을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이라 규정한 발언을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방이 대(對)이란 추가제재에 나서 결과적으로 한국도 견제에 동참하는 모양새가 됐다.
문제의 발언은 윤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UAE 파병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나 "UAE는 우리의 형제국가다.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이란 외무부는 이를 즉각 비판하자 우리 외교부가 해명에 나섰지만, 24일 현 시점까지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테헤란과 서울에서 우리는 진지한 입장을 전달했고, 대화에서 한국 정부는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보였다"면서도 "우리 관점에서 (한국 정부의) 조치는 충분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윤 대통령 발언 문제를 계기로 70억 달러 동결자금 반환을 촉구하고 있다. 거기다 윤강현 주이란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앞선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에 대한 해명도 요구하면서 외교적 압박을 거듭했다.
이란 정부가 문제제기를 거두지 않는 데에는 우리 정부와 용산 대통령실이 '오해'라 치부하며 '적 규정'이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핵심을 비껴간 해명을 낸 게 1차적 원인으로 보인다. 동결자금 문제로 2020년 1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케미호가 나포까지 돼 살얼음판인 와중에 시비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과 영국이 인권 문제로 대이란 추가제재에 나선 배경도 있다. 한국 측도 국회에서 윤 대통령 발언 논란 이후까지도 인권 문제로 이란을 비판해왔다.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23일(현지시간)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고위지휘관 4명과 협력재단 및 재단 이사 5명, 이란 정보보안부 부장관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히잡 착용 거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에 따른 인권 탄압이 이유다.
영국 외무부는 같은 시기 성명을 통해 아마드 페즐리안 검찰 부총장과 키우마르스 헤이다리 육군 총사령관, 준군사조직 바시(Basij) 부사령관 등 5명을 제재 목록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4일 영국과 이란 이중국적자 알리레자 아크바리 전 국방부 차관을 간첩 혐의로 처형한 데 대한 대응 조치다.
우리 국회도 히잡 시위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난달 8일 본회의에서 '이란 여성 인권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 규탄 및 평화적 사태 해결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거기다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선 국민의힘이 이란에 대해 'UAE 적대국' '악당 국가' 등이라 규정키도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대이란 견제에 한국도 인권 문제를 고리로 동참한 모양새인 것이다.
더구나 이란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했으며, 나아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도 이란제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 도발도 엮여 우리 정부로서는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취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의 대응은 미국 등 서방에 힘을 싣는 외교정책 기조에는 맞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란과의 긴장관계가 지속되면 선박 나포 등 갈등이 재현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고유가가 지속되는 와중이라 국내 원유 수입의 70% 물량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경우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