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압박…CFO 간담회 열어
주주들 "은행권 배당 성향 너무 낮다"
연초부터 은행권의 배당 확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상장 금융 지주에게 배당 확대를 요구하며 주주행동을 예고하고 나선데 따른 것이다. 은행권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라도 배당 확대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부실에 대비한 자본 확충을 압박하고 있어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26일 금융위원회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을 위해 은행업감독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그간 금융당국은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에 따른 신용손실 확대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권의 자본확충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금융위가 내놓은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위는 향후 은행의 예상되는 손실에 비해 대손충당금·대손준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은행에 대손준비금을 추가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가 올해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당장 은행권은 대응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은행들은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문제는 최근 확대되고 있는 배당 확대 요구다.
그간 자본시장에서는 은행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배당 성향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해왔다. 최근 5년간 4대 금융 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액의 비율)은 20% 중반이었다. 해외의 경우 50%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에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파트너스)은 국내 상장한 7개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를 상대로 50% 이상의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사전 공개하기도 했다.
사실 은행들은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제안 이전부터 배당 확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왔다. 특히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자본비율 12% 초과분에 대해 전액 주주환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주사의 이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이 대손준비금을 더 쌓아야 한다면, 배당 확대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우려한다.
대손준비금은 대손충당금과 달리 자본 항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은행 손익에는 영향이 없으나, ‘배당가능이익’ 차감 항목이다. 즉 준비금을 더 쌓게 되면 투자자들에게 배분해야 하는 배당 여력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자본 여력이 떨어지는 은행의 경우 대손준비금 부담에 당장 배당을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주주들의 배당 확대 기대감이 찬물이 끼얹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대손충당금도 더 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손충당금 비용이 늘어나도 배당 확대 여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17개 시중은행 CFO(최고재무책임자)들을 소집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금감원은 대손충당금과 관련해 은행권에 의견을 전달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대내외 상황이 워낙 좋지 않은 만큼 은행들에게 건전성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손충당금의 경우 무조건 더 쌓으라는 것보다는 충실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다음달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은행들에 사실상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을 요구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주주들의 배당 확대 요구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나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고민이 크다"며 "금융당국이 시장의 요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