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리 감독이 31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다음 소희’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2017년 전주 콜센터 LB휴넷에서 벌어진 실습 고등학생의 극단적 선택 사건을 영화화한 배경을 전했다.
‘다음 소희’는 송강호, 박찬욱 감독이 수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이날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영화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언론 관계자 100여 명이 극장 자리를 채운 모습이었다.
‘다음 소희’는 콜센터에 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고등학생 소희(김시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반부와, 그의 죽음 이후 사건의 배경과 구조적 문제를 우직하게 짚어 나가는 형사 유진(배두나)을 필두로 펼쳐지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취업률이 중요한 특성화고등학교는 검증되지 않은 회사에 소희를 비롯한 학생들을 실습 보내고, 버티지 못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는 빨간 명찰을 다는 등의 방식으로 낙인을 찍는다.
인건비를 줄이는 게 중요한 대기업 하청 콜센터는 각종 명목을 들어 실습생들에게 약속된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등 착취에 준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한다.
여기에 평생 생계 문제에 시달리며 자식 일에 다소 무감해진 부모,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어 친구를 살펴볼 여력이 없는 또래들 등 구조와 현실적인 문제가 중첩되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정 감독은 이날 “콜센터 환경이나 구성 요소, (업무) 조건 등을 가급적 사실적인 것으로만 채우려고 노력했다”면서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생각해고 봐달라”고 강조했다.
또 2021년 불거진 여수 요트업체 실습생 사건을 들어 “영화를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현장실습생이 사고를 당했다”고 지적하면서 “소희 한 명 만이 아닌 ‘그 다음’이 영원히 반복돼야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제목 ‘다음 소희’를 지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주인공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밝혀나가는 형사이자 허구의 인물인 유진의 입을 통해 강력한 문제의식을 전한다.
소희보다 앞서서 극단적 선택을 한 관리자의 가족은 회사의 지저분한 여론 플레이에 지쳐 보상금을 받고 법적 대응을 포기하고, 경찰은 그 합의를 명분 삼아 조사를 종료한다. 예산 삭감이 두려운 지방교육청은 중앙 교육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청춘의 무고한 죽음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형사 유진 역을 맡은 배두나는 이날 자리에 함께해 “감독님이 무슨 역할을 어떻게 시키든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서포트하고 옆에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믿음을 드러냈다.
배두나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소재를 다루면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됐던 ‘도희야’(2014)로 정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가까워진 바 있다.
주인공 소희 역을 맡은 신인 배우 김시은은 당찬 성격을 지녔지만 부도덕한 사회 안에서 허망하게 꺾여버리는 삶의 모습을 단단하게 표현한다.
김시은은 “촬영할 땐 이렇게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해외 (영화제에) 나가보니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다른 나라에도 수많은 소희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다음 소희’, 8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8분.
젊은 죽음을 양산하는 우리 사회를 향한, 몸쪽 꽉 찬 아픈 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