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교훈’...석유 메이저들, 고유가로 번 돈으로 ‘뒷마당’ 판다

입력 2023-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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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석유 메이저, ‘위도’ 아닌 ‘경도’ 중심 투자 나서
우크라 전쟁 기점 러시아 사업 철수 타격
미국 기업들, 본토 또는 남미
유럽 메이저는 아프리카 주목

▲BP의 독일 겔젠키르헨 정유공장에서 가스 불기둥이 보이고 있다. 겔젠키르헨/AP뉴시스
글로벌 석유 메이저 업체들 사이에 최근 기류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 유전 확보를 위해 위도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해외 진출 보폭을 확대했다면 최근에는 지정학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으로 자국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석유 메이저 업체들의 유전 개발 관련 투자금 투입 방향이 ‘위도’(latitude) 중심에서 ‘경도’(longitude)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엑손모빌과 셰브런과 영국 BP와 셸, 그리고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 5개 업체는 지난 수십년간 남미에서부터 시베리아까지 세계 곳곳에서 시추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기후변화로 인한 에너지 자원의 인식 변화 등 일련의 대외변수를 겪으면서 ‘생각의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들의 순이익 총액 추이. 단위 10억 달러. 출처 이코노미스트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올해 기록적인 수익을 올린 석유 메이저들의 투자금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유가가 2년간 이어지면서 석유 메이저들은 저마다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영국 셸은 이달 초 지난해 400억 달러(약 50조4400억 원)에 달하는 연간 순이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두 배가 넘는 액수로, 이 회사가 상장한 이래 100여 년 만에 최고 순이익이다. 미국 엑손모빌도 지난해 역대 최고 기록인 590억 달러의 순이익을 발표했고, 셰브런도 전년 대비 두 배가 넘는 360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BP와 토탈에너지도 역대급 순이익 잔치를 벌였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이 지난해 한 해에만 거둬들인 순익 총액은 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이렇게 번 돈을 어디에 투자하느냐다. 이코노미스트는 석유 메이저들의 자금이 예전과 다른 곳에 투자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씨티그룹의 분석가 에드워드 모스는 “미국이나 유럽 석유 메이저 모두 경도선을 따라 석유 시추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미국 석유 메이저들이 정치적 리스크가 많거나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아님 둘 다인 ‘프런티어’ 지역에서 철수하고 있다”면서 “미국 기업들 보다 공격적인 유럽 석유업체들은 미국 프로젝트보다 새로운 개발 잠재력을 가진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하고 있는데, 모두 결론적으로 경도선을 따라 사업을 재편성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석유 메이저가 투자 ‘축’을 횡에서 종으로 바꾼 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점으로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고, 이에 미국 기업들은 미국 밖 유전에서 관심을 줄이고 있다.

▲엑손모빌의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 정유시설 전경. 빌링스/AP뉴시스
대표적인 사례가 엑손모빌이다. 이 회사는 카메룬과 차드, 적도기니, 나이지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유전 개발 사업에서 이미 발을 뺐거나, 이를 검토하고 있다. 셰브런은 브라질과 덴마크, 영국 프로젝트를 매각했는데, 만기를 앞둔 인도네시아와 태국 프로젝트 개발 권한도 연장하지 않았다. 대신 두 회사 모두 대규모 투자 자금을 남미나 미국 본토로 옮기고 있다. 셰브런의 경우 올해 자본 지출의 3분의 1 이상을 미국 셰일 프로젝트에 투입, 20%는 멕시코만 프로젝트에 투입할 계획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랫동안 금기의 땅이였던 베네수엘라의 수출 제한을 완화하면서 남미 지역 확장성이 높아졌다.

BP와 셸 등 유럽 석유 메이저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막대한 적자를 낸 후 ‘횡’으로의 노출을 줄이고 있다. 특히 미국 메이저들과 달리 미국에 있는 자산도 축소하고 대신 유럽 기준 남쪽인 아프리카를 러시아 대체지로 주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식민지배한 이후 아프리카와 비교적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처로 매력을 키우고 있는 반면, 미국의 경우 전기차 보조금,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 강화 때문에 익스포저를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탈(脫)탄소화 압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 사이에서 재생에너지, 탄소 배출저감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지난해 석유 메이저들은 22건의 재생에너지 관련 계약을 체결했는데, 그중 5건의 규모는 총 120억 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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