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강타한 지진 발생 9일째. 두 차례 발생한 지진은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내고 있습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사망자가 4만 명을 넘었다고 보도했는데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발표한 튀르키예 공식 사망자 수 3만5418명,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이 전한 시리아 정부 통제지역 사망자 수 1414명,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이 발표한 시리아 반군 지역 사망자 수 4400명을 더한 수치입니다.
지금까지 집계된 사망자 규모만으로도 이번 대지진은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게 됐는데요. 이로써 1939년 12월 27일 동북부 에르진잔 지진 피해(3만2968명 사망)를 뛰어넘어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습니다.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지진은 규모 7.8로 에르진잔 지진과 위력은 같았지만, 첫 지진 발생 뒤 9시간 만에 규모 7.5의 강진이 뒤따랐고,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며 피해가 커졌죠.
더 안타까운 소식은 인명 구조작업이 건물 철거 및 복구 작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생존자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건데요.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차장은 13일 시리아 알레포를 방문하며 “지진에 대한 구조 단계가 끝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즉 주된 구조 활동이 생존자 구출이 아닌 주택, 식량, 교육, 심리사회적 돌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거죠.
튀르키예 또한 하타이 지역에서 굴착기가 심하게 손상된 건물을 무너뜨리는 작업에 돌입했는데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진으로 피해를 본 튀르키예 10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 구조 작업이 종료됐고, 가장 피해가 심각한 곳 중 하나인 안타키아에선 건물 철거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시리아에서 피해가 집중된 서북부 반군 장악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도 생존자 구조 활동을 조만간 종료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죠. 구조 단계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도 표현했습니다.
이는 이미 72시간으로 알려진 생존자 골든타임이 훨씬 지난 상황이기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은 지진 발생 시간이 200시간을 넘어가면서 추가 매몰자 생존자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에두아르도 레이노소 앙굴로 멕시코국립자치대 공학연구소 교수는 AP 통신에 “잔해에 갇힌 사람은 5일이 지나면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고, 예외는 있지만 9일 후에는 0%에 가깝다”고 설명했는데요. 여기다 현지 추운 날씨는 생존 가능성을 더욱 낮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재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은 영하의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기적 같은 생존자들의 구출 소식은 계속 들려왔습니다. 튀르키예 현지 방송에 따르면 남동부 아디야만에서 건물 잔해에 갇혀 있던 77세 생존자가 지진 발생 이후 무려 212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하타이 주에서 한 아버지와 딸이 약 209시간 만에 구조됐고, 아디야만 주에서는 라마잔 유셀(45)이 207시간 만에 발견됐죠. 카흐라만마라스 주에서는 형제 사이인 바키 예니나르(21)와 무하메드 에네스 예니나르(17)가 200시간 만에 구조되기도 했는데요. 이 형제는 단백질 파우더를 마시며 생명을 유지했다고 밝혔죠.
아디야만 주에서는 거실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잔해 속에 갇혔던 마하메드 카퍼 세틴(18)이 지진 발생 198시간 만에 구조됐습니다.
생후 열흘 된 신생아도 엄마와 함께 구출된 소식도 있었는데요. BBC에 따르면 하타이 지역 남쪽에 살고 있던 네질라 자무르(33)는 아이에게 수유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건물 잔해에 갇혔습니다. 자욱한 먼지가 걷힌 뒤에야 지진으로 가라앉은 뒤라는 걸 알아챘는데요. 그의 옆에 쓰러져 있던 옷장이 콘크리트 무더기를 막아준 덕택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죠. 아이 또한 무사했습니다.
네질라는 아이를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는데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이가 모유 수유가 가능했다는 점인데요. 아이에게 모유 수유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네질라는 갇힌 지 90시간 만에 구출됐습니다.
이처럼 기적의 순간이 찾아왔던 이유는 각국에서 모인 긴급구조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 긴급 구조대도 기적 생환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7일 현지로 출발해 9일부터 안티키아 일대에서 활동 중인 우리 긴급구조대는 11일, 17살 소년과 51살 여성을 구조하면서, 현재까지 8명의 생존자를 구해냈습니다.
한국 구조대와 함께 구조활동을 함께하는 한국 구조견들의 활약도 돋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구조대에는 특수 인명구조견인 ‘토백이’, ‘티나’, ‘토리’, ‘해태’ 등 4마리가 투입됐는데요, 이 중 세 마리가 유리와 부러진 철근 탓에 발을 다쳤죠. 하지만 이들 모두 치료를 받은 후 다시 현장에 투입됐고, 발에 붕대를 감은 채 계속해서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구조견들은 무너진 건물 잔해 위를 누비고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잔해 속의 좁은 공간에도 접근해 수색 중이죠.
이들의 활약을 튀르키예 국영방송 TRT 하베르 또한 ‘한국 구조견 3마리, 발에 붕대를 감고 작업한다’는 기사로도 알렸습니다.
현재 튀르키예 현지는 폐허로 변한 거리 곳곳에 시신을 담으려는 가방이 줄지어져 있고, 터전을 잃은 생존자들은 시신이 부패하며 나오는 악취를 막으려 마스크를 쓴 채 추위, 배고픔과 싸우고 있는데요. 참혹한 현실에서도 이들을 위해 애쓰는 구조대들의 생존자 구출 소식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죠? 부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는 기적의 이야기가 더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