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KIC)의 지난해 투자손실액이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양경숙 의원이 어제 공개한 KI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손실액이 297억 달러(38조 원)에 달했다. 손실액 기준으로 2005년 설립 이래 최악이다. 연간 총자산 수익률도 -14.36%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17.53%) 이후 가장 저조했다.
KIC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자산 운용을 위탁받아 거액의 자금을 굴리는 국부펀드다. 국민연금과 더불어 국익을 키우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운용 자산 규모는 200조 원 안팎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를 책임지고, KIC는 국가비상금인 외환보유액을 책임진다. 국부와 민생을 짊어지는 쌍두마차인 셈이다. 그런 만큼 KIC의 이번 투자성적표가 국민 눈에 곱게 비칠 까닭이 없다. 더욱이 이번 소식에 앞서 국민연금은 최근 10년 수익률 비교에서 글로벌 연기금 중 꼴찌권에 그쳤다는 달갑잖은 소식을 전했다.
KIC와 국민연금만의 일도 아니다. 한국은행도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 감소 등을 이유로 지난해 세후기준 순이익이 4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예고한 바 있다. 나라 곳간에 금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 셈이다. 국민이 쌍두마차와 한국은행을 싸잡아 그 밥에 그 나물이냐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국부와 민생을 책임지는 기관들의 투자 실적이 왜 이렇게 엉망인가. KIC는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주식, 채권 등의 자산 가격이 동시 추락한 지난해 투자 환경을 들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양이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지난해 12월 실적을 발표한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 네덜란드 연기금(ABP) 등도 10%대 연간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KIC만 쓴맛을 본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번 투자성적을 공개한 양 의원은 “KIC 투자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또한 일리가 없지 않은 지적이다. 아마도, 국민 다수는 KIC의 변명보다 이런 지적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정부와 국부펀드 책임자들이 외부 환경 탓이나 하면서 비판의 물결이 가라앉기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왜 KIC와 국민연금 성적을 비판적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국민이 많은지 자성의 자세로 돌아봐야 한다. 나아가 국부펀드의 발목을 잡는 정책 오류나 의사결정상의 허점은 없는지, 또 인재양성과 같은 구조적 보완 과제는 없는지 등도 촘촘히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