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준칙 필요성 일깨우는 세계 석학의 경고

입력 2023-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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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 벡 독일 포르츠하임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어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를 점치면서 유럽 정부부채를 크게 문제시했다. “(유럽) 금융기관들이 너무 많은 국채를 가지고 있다. 이게 유동성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2009년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를 중심으로 재정위기 소용돌이에 휘말려 2010년대 중반까지도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세계적 석학이 그 재정위기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린다고 진단한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방아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당겼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렇다고 미국 월가만 탓할 일은 아니다. PIIGS 국가들이 허술히 다룬 가계부채 문제가 은행 부실을 키웠고, 그것이 결국 정부부채 리스크로 전이됐던 재정위기 흐름을 되돌아보면 자승자박의 감이 훨씬 큰 것이다. 벡 교수가 그 위기의 재연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유럽 사회안전망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에 다름아니다. 연금 개혁안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 프랑스만이 아니라 조만간 유럽 전역이 시끄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경고는 대한민국에도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작년 2분기 중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중은 45.5%다. 비교 가능한 28개국(1위 일본은 238.1%) 중 20위다.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안심할 계제는 아니다. PIIGS 국가 중에서도 스페인의 정부부채는 2007년 36%에 불과했지만 2011년엔 80%대로 급상승했다. 아일랜드 사정도 엇비슷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재정적자가 근래 매년 100조 원 안팎 규모로 쌓이고 있다. 빛의 속도로 빚더미가 커지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사회로 빠져들고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복지지출 증가가 발등의 불이다. 10여 년 전 스페인, 아일랜드에 비해 나을 게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부채가 2027년 57.7%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 정부부채비율이 150.1%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부채의 급증을 막을 제도적 대안 마련을 권하는 국내외 조언은 차고 넘친다. 현실이 이렇다면 재정 건전성을 어찌 확보할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실은 딴판이다. 가장 급한 재정준칙 입법화 과제마저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벡 교수가 국내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어떤 경고를 내놓게 될지 궁금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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