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휠베이스 거리만 경차보다 길어
V8 6.2ℓ 자연흡기 엔진 얹고 426마력
도로를 압도하는 커다란 덩치가 매력
#바로 코앞에서 달리는 국산 대형 세단이 꽤 작아 보인다. 주변에 함께 달리는 SUV 지붕도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길게 뻗은 보닛 역시 양쪽 차선을 가득 채운다. 교차로 신호대기에 멈춘 사이, 옆 차선의 45인승 대형 버스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버스 운전자와 눈높이가 똑같았다. 깜짝 놀라는 나를 보고 그는 더 놀란다.
자동차 전용도로와 국도로 짜인 70km 시승 구간을 GMC 시에라와 달렸다.
GMC는 사람에 따라 생경한 브랜드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남기고 간 대형 트럭 대부분이 GMC였다. 속된 말로 ‘제무시’였다. 어른들에게 익숙한 엠블럼이다.
21세기 GMC는 이전과 다르다. GM 산하 브랜드 가운데 SUV와 픽업트럭을 전문 담당하는 브랜드가 됐다. 다만 이제 ‘고급화’에 방점을 찍는다. 미국 GM의 고급 SUV와 고급 픽업트럭 모두 GMC에서 나온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는 한국지엠(GM)이 수입해 판매한다. 한국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시에라는 GMC를 대표하는 풀사이즈 픽업트럭.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얹은 쉐보레 실버라도가 있으나 시에라는 뚜렷한 고급감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주차장에서 나란히 코끝을 맞추고 늘어선 시에라는 단연 크기가 압권이다. 국산차들이 길이 5m를 넘느냐 마느냐로 고민할 때, 시에라는 무려 5890mm의 차 길이를 자랑한다. 왕복 4차선 도로에서 단번에 U턴하기 어려울 정도다. 휠베이스(3745mm)만 무려 경차의 길이 기준(3600mm)을 넘어선다.
차 앞면과 옆면 뒷면 곳곳에는 크롬 장식이 차고 넘친다. 니어 럭셔리를 주장하는 GMC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
묵직한 도어를 열면 차 옆면의 사이드 스텝이 조용히 펼쳐진다. 실내는 뜻밖에 아기자기하다. 겉모습에서 주눅이 잔뜩 들었지만, 실내는 거부감없이 접근할 수 있다.
두꺼운 프레임이 깔려있어 실내 바닥이 높은 편. 여기에 손으로 조작하는 버튼과 다이얼은 모두 큼지막하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픽업트럭답게 장갑을 낀 채로 대부분 버튼을 조작할 수 있다.
2열 공간은 웬만한 대형 세단보다 훨씬 크다. 반대로 1열, 특히 동반석 레그룸은 좁아터졌다. 차 길이만 6m에 달하는 대형 픽업트럭이지만 실내는 의외로 아기자기하다.
엔진은 V8 6.2ℓ 자연흡기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426마력을 낸다. 대배기량 엔진과 맞물린 변속기는 자동 10단. 중저속 구간에서는 가속을 반복할 때마다 바쁘게 회전수가 오르내리며 다음 기어를 바꿔탄다.
400마력이 넘는 넉넉한 출력은 고회전으로 올라갈수록 진가를 뽐낸다. 10개로 쪼개진 변속기는 급가속 때 스킵 시프트(2단계씩 이뤄지는 기어변속)는 물론 3~4단을 가볍게 오르내리며 최적의 기어를 찾는다.
GMC 시에라는 도심과 자연, 도로 위 등 어디에 세워도 뚜렷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넉넉한 승차감과 V8 엔진의 여유로움도 커다란 장점. 높은 시트에 올라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재미마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