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어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막을 올렸다. 앞서 전날 같은 장소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도 개막했다. 전인대는 우리 국회에 해당하며 정협은 최고 권위의 자문기구다. 전인대와 정협은 매년 3월 비슷한 시기에 열려 양회로 불린다.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미국과 경제패권을 다툴 정도로 성장한 인구대국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대략적 방향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양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기 집권체제 출범을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선포하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3기 체제의 선택은 일차적으로 14억 명 중국인의 명운을 좌우하지만 대한민국에도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한·중 양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특히 경제 측면에서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은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은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했다. 양국 모두에, 그리고 세계 시장에 득이 된 교역 공식이다. 하지만 대중 무역 흑자는 지난해 95% 급감했다. 22년 무역수지 흑자 국가 명단에서 중국은 더 이상 상위에 있지 않다. 22위에 그칠 뿐이다. 글로벌 경기 탓에 지난해 주요 수출국들이 대체로 수출 부진을 겪었으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더 부진했다. 대중 수출 부진이 크게 작용했다. 과거의 달콤한 추억은 뒤로하고 중국의 오늘과 내일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어제 전인대 제1차 전체회의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 안팎’으로 제시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발표를 생략한 2020년을 제외하면 성장률 목표를 발표하기 시작한 1994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국 지도부는 2006년 이후 한동안 매년 8%선의 목표성장률을 제시했고, 매번 이듬해에는 목표치를 웃도는 성과를 냈다고 발표했다. 2012년 이후에도 7%를 웃도는 목표를 내걸고 경기 부양에 주력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국 정부가 5%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사실상 저성장을 공식화한 셈이다.
시 주석의 중국은 하필이면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3기 선포식 석상에서 과거와 결을 달리하는 수치를 선택했다.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 부양책으로도 예전처럼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무리라고 인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 또한 3기 체제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접고 현실에 부합하는 대응 청사진을 짜야 한다. 미·중 갈등이 더 이상 지정학적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사실도 깊이 숙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