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 연구위원
상무부는 기업에만 이익이 되는 직접 세금 감면과 같은 정책보다는 일자리 창출, 교육과 훈련, 또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지역 사회에 파급 효과를 창출하는 주 및 지방 정부 연계 프로젝트를 우선 선정한다. 이런 내용이 보조금 신청 조건에 드러나 있다. 신청 기업은 인력 수급 및 양성 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대학 및 기타 당사자와 연계하여 고기술뿐만 아니라 중저기술 분야에서 근로자에게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보조금을 받는 회사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에 이 돈을 사용할 수 없다. 기업들은 또한 설비 건설을 위해 노조 노동자와 미국산 철강을 사용해야 하며, 근로자에게 저렴한 보육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이 정도는 일반적인 수준의 신청 조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조금을 신청하는 회사에 상세한 재무 예측 자료를 당국에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영업 및 회계자료를 검증 기관에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더 놀라운 조항은 고도의 비밀과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에 국방부 등의 국가안보기관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미국 납세자들이 이 정책의 성공을 공유할 수 있도록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회사는 수익성이 예상보다 높은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를 반납해야 한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거스르는 수준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에 더하여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 조항은 10년 동안 중국에서 기업의 운영에 엄격한 제한을 두는 조항이다. 이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 대한 비즈니스 잠재력을 상당 부분 제약할 수 있다. 보조금 수혜 기업은 10년 동안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장하는 투자나 거래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수혜 기업이 국가안보 문제를 초래하는 외국과의 공동 연구 또는 기술 라이선스 거래에 고의로 참여하는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기업 운영에 상당한 부담과 제한을 담고 있는 보기 드문 조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을 받는 것이 기업에 유리할지 의문이 든다.
보조금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미국의 인위적인 반도체 산업 부흥 시도가 지속 가능할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업용 반도체의 대부분은 아시아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된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생산 설비를 만들어도 높은 인건비와 다른 비용이 증가하여 가격경쟁력은 떨어진다. 대만의 TSMC 설립자인 모리스 창(Morris Chang)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 비용이 대만보다 50%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비용의 불균형은 단기간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보조금 수혜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미국 생산에 계속 투자할 동기는 사라진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대중 압박 과정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가드레일 조항으로 불리는 대중 투자 제한 조치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될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일례로, 대만 기업이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와 범용 반도체를 모두 제조하는 경우 후자를 위해 미국 기술을 계속 이용할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범용 반도체 생산 라인이 별도의 건물에 있는 경우 제한 대상이 아니라는 상무부 발표는 혼란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다 보니 조치의 세부 규칙이 어떻게, 어느 정도로 시행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기업들이 규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거나, 다른 해결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규제 조치들이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발표된 보조금 정책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이 이데올로기와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분열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일련의 정부 주도 정책이 외국산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를 성공적으로 줄이고, 국가안보를 보호할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는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가 글로벌 기술 리더를 육성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워싱턴의 시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기업이 비용이 저렴한 해외로 생산을 이전하여 효율성을 추구한 자유무역 정책의 심각한 역전이다. 세계 최고의 미국 하이테크 기업들은 모두 자유로운 시장과 공개 경쟁의 산물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