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업 내 유보자금을 벤처투자시장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전략적 투자자(SI)에 친화적인 법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12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민간 주도 전환기의 모험자본시장 질적 성장 방안’ 보고서를 통해 민간 부문의 투자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벤처기업과 모기업의 관계를 엄격하게 보는 현행 법제도를 바꿔 전략적 투자자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에 따르면 CVC(기업형 벤처캐피탈)가 결성한 펀드에 모기업이 출자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모기업이 시장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반 기업이 제3의 벤처캐피탈이 결성한 펀드에 출자하더라도 5년 이내에 펀드가 투자한 기업과 지배관계를 형성하면 공제했던 세금을 회수하기도 한다.
이는 지분투자로 시작해 스타트업 M&A까지 염두에 두는 전략적 투자자의 행동 양식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자금을 투자하는 재무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를 할 경우 스타트업의 비전을 보고 자금을 투입하기 때문에 향후 지배관계 형성을 고려하기도 한다.
중견 이상 규모의 모기업과 특수관계가 있는 스타트업이 되면 정부의 창업보육사업, 스케일업 지원 사업 등에 참여할 수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가치가 매우 낮게 형성된 극초기 단계부터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팅 및 엑셀러레이팅에 관여한 경우 기업의 지분율이 30%를 초과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모태펀드를 통해 민간투자 마중물을 삼겠다고 해왔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배경에 이처럼 전략적 투자자에 불리한 제도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체 벤처펀드는 2021년에 전년 대비 2조 6114억 원, 2020년에 전년 대비 2조 6453억 원 늘었다. 2022년에는 증가 폭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19년 이후 쭉 증가해 온 모태펀드가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한 영향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책금융은 2020년 2조 3042억 원, 2021년 2조 8113억 원으로 쭉 증가세를 보였지만 2022년 2조 7176억 원으로 처음 감소세를 보였다. 정책금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태펀드는 지난해 2015억 원 감액됐다.
모태펀드가 줄어들어도 민간 부문의 펀드 결성이 이를 상쇄한다면 전체 벤처펀드 결성액에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민간 부문이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면서 전체 벤처펀드 결성액이 모태펀드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간 부문 펀드 결성을 늘리겠다고 모태펀드를 줄였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모기업이 CVC가 결성한 펀드에 투자하더라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민간투자 활성화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정 지분 이상의 전략적 투자가 행해졌어도 스케일업의 역할을 온전히 모기업이 감당하게 하기보다 벤처투자 목적의 실질이 명확한 경우 정부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나 연구위원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기성 중견기업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면 민간 주도의 벤처투자시장 조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금융기관이 직접 하기보다는 민간 상업은행이 뛰어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