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와 경기 구리시가 33번째 한강 다리 명칭을 놓고 ‘이름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강동구는 신설되는 다리 이름을 ‘고덕대교’로, 구리시는 ‘구리대교’로 명명할 것을 각각 주장하고 있는데요. 주민 서명운동까지 진행되며 양측간 이견이 심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이 같은 이름 전쟁의 배경으로는 지역 이미지 개선과 발전, 집값 등 적지 않은 실익이 배경이 됐습니다. 다리가 들어서면 교통이 좋아진다는 기대가 생기고, 집값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또 대교 이름을 통해 지역의 인지도도 올라가고, 일종의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경쟁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추가 개발을 통한 지역 발전 역시 기대할 수 있죠.
강동구와 구리시는 각각 근거를 대며 팽팽한 줄다리기 중인데요. 집값에 예민한 대한민국의 현재를 반영한 ‘웃픈(웃기고 슬픈)’ 사례입니다. 이에 한강 다리 이름 뿐만 아니라 신설되는 지하철 역명이나 대형 쇼핑몰을 명칭을 두고도 지역간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요. 한강의 33번째 다리가 고덕대교가 될지, 구리대교가 될지 살펴보겠습니다.
강동구와 구리시가 경쟁 중인 다리는 강동구 고덕동과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약 1.7㎞ 길이의 왕복 6차로 대교입니다. 세종~포천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돼 2016년 착공했고, 이르면 올해 말 완공 예정이죠.
먼저 강동구는 교량의 시작점이 강동구 행정구역인 고덕동이기 때문에 고덕대교라 불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강동구 일대에 추진한 ‘고덕강일 공공주택사업’도 언급했는데요.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개발사업은 한국도로공사에 광역교통개선대책 분담금으로 531억6000만 원을 냈고, 도로공사는 이 돈으로 다리 건설 비용의 일부를 충당했습니다. 즉 서울시가 다리 건설 비용을 냈으니, 서울 쪽 지명인 고덕대교 불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구리시는 교량이 설치되는 한강 구간의 약 87%가 행정구역상 구리시인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하철 8호선 별내선 연장의 운영비 부담도 서울시와 경기도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구분한 만큼, 교량 명칭 역시 행정구역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한강 교량 명칭도 ‘강동대교’로 정해졌기에, 형평성 측면에서 구리대교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부연했죠.
양측은 고속도로 공사로 입은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공사 구간이 한강 둔치였던 구리시와 달리, 강동구는 고속도로가 주택가를 통과해 공사 기간 주민들이 소음과 먼지, 교통 혼잡 등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백경현 구리시장은 “세종∼포천고속도로가 구리한강시민공원을 지나면서 구리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공사장이 됐다”며 “다리와 남구리IC, 강변북로 등을 연결하는 접속 도로 면적도 넓어 구리시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죠. 자기 지역이 더 큰 피해를 입었으니, 다리 이름에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강동구와 구리시의 ‘다리 이름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8년, 강동구 암사동과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구리암사대교 건설 당시에도 양측은 서로의 지역명을 내세웠습니다. 강동구는 암사대교, 구리시는 구리대교를 주장하고 나선 바 있는데요. 당시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양측 주장을 절충해 구리암사대교로 이름을 결정했습니다.
또다시 발발한 이름 싸움에 여론전도 확산하고 있는데요. 9일 강동구와 구리시에 따르면 강동구는 7만 명, 구리시는 4만 명의 주민이 서명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다리뿐 아니라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역사, 아파트 등 시설 이름과 관련해서도 지역 간 갈등이 벌어집니다. 앞서 2021년, 상암동 롯데몰 사업의 명칭을 두고 상암동 주민들과 중동·수색동·남가좌동 등 인근 주민들이 이견을 빚은 바 있죠.
논쟁은 그해 3월 마포구를 지역구로 둔 김기덕 서울시의회 부의장이 상암동에 세워질 롯데몰 건설 진척 상황을 논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롯데 관계자가 롯데몰 명칭은 트렌드에 부합하는 것으로 붙이겠다고 밝혔는데, ‘상암’이라는 명칭을 붙이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동·수색동·남가좌동 주민 중 일부는 ‘상암’을 빼고 ‘DMC(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명칭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상암동 주민들은 ‘상암이라는 지명을 제외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반발했습니다.
당시 마찰 역시 ‘집값’에서 비롯됐습니다. 랜드마크에서 지역명이 가지는 브랜드 효과를 둔 갈등이라는 분석입니다. 상암동 주민들은 ‘상암’이 붙어야, 나머지 지역은 ‘DMC’가 붙어야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하철 역명을 놓고도 지역 간 불협화음이 나왔는데요. 화성시는 2026년 개통을 목표로 진행 중인 동탄인덕원선이 지나가는 115 정거장의 이름을 짓기 위해 2021년 10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습니다. 조사 결과 ‘진안능동역’이 ‘동탄능동역’보다 더 많은 선택을 받았죠. 그러나 일부 능동 주민들은 해당 정거장에 대해 “생활권이 동탄3동에 가깝다”고 반박하며 동탄능동역을 주장했습니다. 이 정거장이 들어서는 지역은 법정동으로는 능동, 행정동으로는 진안동에 속해 있죠. 그러나 바로 옆은 행정동 동탄3동에 속하는 경계 지역입니다. 반면 진안동 주민들은 “행정동과 법정동을 모두 포함한 진안능동역이 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2015년에는 신분당선 연장선(정자~광교) 3개 역을 두고 ‘광교’라는 명칭을 선점하기 위한 광교 신도시 지역의 신경전이 치열했습니다. 애초 신분당선 역명은 경기도청역(SB05역), 경기대역(SB05-1역), 신대역(SB04역)으로 불렸으나, 당시 역명 확정을 앞두고 수원 주민과 용인 주민들이 저마다 ‘광교역’이라는 명칭을 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결국 광교역과 광교중앙역, 두 개의 역이 들어섰죠.
한편 강동구와 구리시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강 다리의 이름은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지명위원회의 의결로 결정됩니다.
양측은 결의안 채택 등을 진행하며 국가지명위원회 결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동구의회는 지난달 7일 ‘고덕대교 및 고덕나들목 명칭 확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구리시 측은 “지명위원회가 열리는 시점에 맞춰 교량 명칭을 구리대교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지명위원회와 한국도로공사 등에 건의하겠다”고 밝혔죠.
한강을 가로지르는 33번째 다리 이름은 과연 무엇이 될까요? 향후 국가지명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