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 국제경제부 차장
마크롱도 물러설 곳이 없다. 2018년 노란조끼 시위대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유류세 인상안을 한 달 만에 철회하면서 리더십은 이미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지만, 극우정당 대표 마린 르펜을 상대로 거둔 신승이었다. 인종차별주의자만은 막아야 한다는 프랑스의 마지막 양심이 마크롱을 살린 것이다. 가까스로 권력을 붙잡은 마크롱에게 연금개혁 실패는 정치적 사형선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정 동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정치 생명도 장담할 수 없다.
마크롱은 변화를 거부하면서 빛을 잃어가는 프랑스를 살려내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마크롱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2016년, 프랑스는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헤맸고 국가 채무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했으며 실업률은 10%를 웃돌았다. 낭비벽도 심각했다. 재정적자는 GDP의 4%로, 유럽연합(EU) 기준 3%를 번번이 못 지켰다. 비대해진 공공부문은 밑 빠진 독이었고, 철 지난 규제와 더딘 개혁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도 기성 정치는 무기력했다. 당시 사회당 정부의 재정경제부 장관이던 마크롱은 프랑스 경제에 채워진 족쇄를 푸는 내용의 ‘성장과 활동 그리고 기회 균등을 위한 법’, 일명 ‘마크롱법’을 선보였다. 협상과 설득, 수천 번의 수정을 거쳐 최종 투표만 남겨뒀지만, 의회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우파 정당은 반대표 지령을 내렸다. 사회당에서도 세력 다툼 끝에 반대 움직임이 일었다. 마크롱은 “법안이 정치놀음의 희생양이 됐다”며 탄식했다.
프랑스를 짓누른 절망과 낙담은 ‘프랑스병(病)’을 고쳐 놓겠다는 ‘어린왕자’를 최연소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60년간 프랑스를 지배한 기존 정당들을 날려버리고 39세 정치 신인을 선택한 것이다. 1789년 세계 최초로 시민혁명을 이뤄낸 프랑스의 또 다른 ‘혁명’이었다. 변화와 개혁이 마크롱의 정치 자산이자 전부인 이유다.
“혁신이 자유로운 프랑스를 만든다”는 마크롱의 뚝심만큼, 저항도 강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던 사람들도 막상 자신의 밥그릇이 걸리자 돌변했다. 시위와 파업, 봉쇄와 태업이 잇따랐다. 프랑스는 도저히 개혁이 진행될 수 없는 나라라는 냉소가 번졌다.
어렵지만, 마크롱의 도전은 성공해야 한다. 그의 실패는 한 정치인의 단순한 퇴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좌도 우도 아닌’ 마크롱이 떠난 자리는 이념적 극단으로 채워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마크롱의 힘이 빠진 사이, 이미 극좌와 극우파는 현대 역사상 최다 득표로 몸집을 불렸다. 극단 세력이 판치는 프랑스는 유럽 정치지형을 바꾸고, 유럽발(發) 지각변동은 세계 질서를 흔들 수 있다.
‘철학자’ 마크롱의 과거가 난국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될지 모른다. 학창 시절 마크롱은 프랑스 대철학자 폴 리쾨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 덕분일까. 마크롱과 함께 일했던 한 인사는 “마크롱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우파와 좌파를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정치의 미학은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데 있고, 저는 그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할 것입니다.” 마크롱의 마음이 프랑스인들에게 닿기를 기대해본다. 0jung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