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접대 이력을 가진 일본이 윤 대통령을 상대로도 실력을 발휘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극진한 일본의 접대 문화에는 ‘오모테나시(극진한 환대) 외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죠. 그 정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5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경비 총 4022만 엔(약 4억 원)을 들여 한 끼 2000만 원에 달하는 화로구이를 대접하고, ‘골프광’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해 프로 골퍼와 라운딩을 즐겼습니다. 이후 도쿄 롯폰기의 화로구이 선술집 전체를 대관해 비공식 만찬을 가지기도 했죠.
윤 대통령을 맞이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오모테나시는 만찬 장소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 일본식 정원이 조성된 ‘핫포엔’을 만찬 장소로 선정했는데요. 핫포엔은 1600년대 만들어진 4만 ㎡(1만2000평) 규모 대저택 부지에 수목·연못·정자·분재 등을 갖춘 일본식 정원입니다. 기시다 총리 부인인 유코 여사는 일본 전통 다도 방식으로 녹차를 대접하기도 했죠.
일본의 ‘오모테나시’는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 세심한 접대로도 유명합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는 초밥을 좋아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취향에 맞춰 도쿄 긴자의 초밥집에서 만찬을 가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 때도 ‘아이스크림 덕후’인 바이든 대통령을 위해 4시간 30분 거리에서 공수한 젤라또를 후식으로 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은 1박 2일 일정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날 만찬은 부부 동반으로 진행됐는데요. 두 정상은 도쿄 긴자에서 스키야키로 유명한 ‘요시자와(吉澤)’ 식당에서 1차 만찬을 즐기고, 요시자와에서 280m가량 떨어진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로 자리를 옮겨 2차 만찬을 가졌습니다.
두 식당 모두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요시자와는 1924년 정육점으로 시작해 식당으로 확장한 노포인데요. 저녁 식사 기준 1인 약 1만3000~3만 엔(13만~30만 원)에 스키야키, 샤부샤부, 스테이크 등으로 일본 고급 소고기 ‘와규’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한편 1895년 개업해 128년째 운영 중인 렌가테이는 포크커틀릿에 양배추를 곁들인 일본식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의 발상지로 알려졌습니다. 주메뉴는 2600엔(약 25000원) 수준이죠.
특히 2차 만찬 장소인 렌가테이는 오므라이스를 좋아하는 윤 대통령의 기호를 반영해 일본 측이 고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친밀하고 거리감 없는 형식 속에 공식 회담에서 못다 한 솔직한 대화 기회”라고 전했습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도 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양 정상이 서로보다 상대를 알 수 있도록 가게를 선택했다”며 “관계 개선을 향한 최초의 한 걸음”이라고 설명했죠. 두 정상은 이곳에서 한국 소주와 일본식 사케, 맥주 등을 마시며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국 소주는 윤 대통령이 화합의 뜻으로 제안했는데, 기시다 총리는 맥주와 소주를 곁들여 마시며 ‘우호의 맛’이라고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번 만찬이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지 언론들은 부부 동반 만찬과 2차 만찬이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죠. 이에 1차 스키야키 만찬으로 격식을 차린 저녁 식사를 하고, 자리를 옮긴 오므라이스 식사 자리에선 두 정상이 진정한 ‘아이스 브레이크(얼음을 깨듯 어색한 분위기를 깸)’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일본은 이번 회담을 경색돼 있던 한·일 관계를 진전할 기회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매체 FNN프라임온라인은 일본 정부가 ‘이례적인 환대’를 보인 데 관해 애초 일본 정부 내에 신중론도 있었으나 정부 관계자가 “관계 개선에 대한 윤 대통령의 열의는 진심”이라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정부 관계자가 “일본도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죠. 나아가 일본에서는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요구했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굴종 외교’였다는 비판 여론이 팽배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종료 통보 효력 정지’라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던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원상 복귀와 수출 규제 해제의 성과를 얻어냈다고 자평하는데요. 야당에서는 산업 방면에서 한국의 이득을 온전히 챙기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의 군사 기밀을 공유하는 지소미아 복원은 한국의 손해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나섰죠.
특히 산업 부문에서는 한국에 아쉬운 거래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6일 일본은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해제하고,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WTO 제소를 취하하겠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미 일본 측의 수출 규제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내 이득은 크지 않은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실질적 이득을 위해서는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목록) 원상회복까지 협의가 나아가야 했다는 분석이 제기되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이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역사 문제에 대한 비판도 여전합니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에 대한 국민 반대가 큰 상황에서, 이번 회담에서의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국민 불만이 더욱 커진 상황이죠. 한·일 역사문제와 관련한 기시다 총리의 발언도 모호하고 추상적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회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공동선언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으나,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정상회담에서) 확인했다”며 모호한 단어들을 사용했죠. 여기에 더해 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해, 이번 회담에 대한 여론은 한층 냉담해지고 있습니다. 화이트리스트 협의부터 역사 문제 해결까지 이번 회담은 정부에 많은 숙제를 남겼는데요. 이들을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지에 국민은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