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0개월간 수많은 정책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됐다. 딱히 결실을 본 건 없다. 대부분 야권과 이해당사자들의 반대에 막혔다. 일부 정책에 대해선 여론의 반발이 거세다.
윤석열 정부의 개혁정책에 반발이 큰 이유는 다양하다. 핵심을 꼽자면 ‘생략’과 ‘배제’다.
과정이 생략됐다. 정책학에서 정책은 사회문제, 정책문제, 정책의제 형성, 정책 결정, 정책평가, 환류 등 절차를 거친다. 정책문제, 정책의제, 정책 결정 과정에선 분석이 이뤄진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정부는 먼저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중에서 정책적 해결이 필요한 과제를 추린다. 이후 다양한 대안을 놓고 분석·평가해 최적의 대안을 고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급하다. 문제의 원인을 단순화하고, 바로 대안을 결정한다. 문제가 무엇이든, 이미 답을 정해놓고 소수 전문가 풀을 활용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내세운다. 그다음은 집행이다.
이해당사자는 배제됐다. 연금개혁에선 가입자들이, 노동개혁에선 노동자들이, 교육개혁에선 교사들이, 경찰개혁에선 경찰들이, 공직개혁에선 공무원들이 빠졌다. 윤석열 정부의 특징 중 하나는 정책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보단 그들의 ‘논조’와 ‘소속·출신’을 본단 것이다. 비판이나 정부에 적대적인 집단의 주장은 합리성과 무관하게 배척한다. 안 그래도 답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정책인데 반대 논리를 반영한 수정·보완도 없으니 정책에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권 관점에서 한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사단체, 경찰대 출신 고위경찰, 공무원단체, 여성단체 등은 구태하고 부패한 기득권세력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야권과 언론도 그저 적폐다.
이런 정책에 반발은 당연하다. 홍보 부족 같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정책 자체가 문제다.
관료도 배제됐다. 하달식 정책은 관료들의 재량을 없앤다. 여기에 현 정권에선 유독 대통령실의 검열이 심하다. 대통령실에서 각 부처에 브리핑, 설명회를 지시한다. 구체적인 내용도 정해준다. 대통령실에서 부처가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설명자료, 참고자료를 수정·첨삭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정부부처 관료들의 역할은 그저 하달된 정책에 대한 기계적 집행이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이해관계자를 배제하지 않는 거다. 이런 정책은 결함이 적다.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집행까지 큰 어려움이 없다. 이해관계자들은 그들이 참여한 정책에 반대하기 어렵다.
절차적 정당성을 못 따질 상황이라면 충분한 설득이 필요하다. 관료도 설득의 대상이다. 장관들에게 브리핑을, 부처에 보도·설명자료 배포를 닦달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일선에서 이해당사자와 국민을 설득할 관료들이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취지에 공감하는 게 먼저다. ‘국익을 위한 거니 나를 따르라’ 식의 강요는 설득이 아니다. 누구든 뭐가 국익인지 판단할 수 있다. 국민은 그만큼 똑똑하다. 솔직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중요한 건 자세와 내용이다.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실패한 정책은 의미가 없다. 대통령실이든, 여당이든 어떤 정책을 만들지 고민하는 시간의 반만큼이라도 어떻게 정책을 성공시킬지 고민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