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위기 2013년과 판박이"
부실채권 인수해 전문적 처분
추가 하락 억제 등 간접효과도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에 따른 배드뱅크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위기 때마다 한시적으로 운영해온 배드뱅크를 상시로 설립해 선제적인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배드뱅크 설치를 통한 부동산 PF 위기 해법 모색 국회 세미나’를 열고 ‘PF 배드뱅크 설치’의 세부 입법과제를 논의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의 파산, 세계적인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매각 등이 불거지면서 금융시장 최대 불안 요인으로 꼽히는 부동산 PF 잠재 부실의 현재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은 한시적인 운영이 아닌 상시로 배드뱅크를 설립하자는 법안을 내놨다. 배드뱅크란 일반은행으로부터 부실자산과 채권을 저렴하게 사서 전문적으로 처분하는 은행을 말한다.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설립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캠코에 부실자산 및 채권 정리를 위한 상설 기금(안정도약기금)을 설치함으로써 한계기업 구조조정의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캠코가 중장기 계획하에 정부 주도 배드뱅크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부동산 PF 부실이 금융시장 전반에 확산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발제자로 나선 홍 의원은 “최근 SVB발 충격파에 한국이 제일 먼저 들여다본 가장 약한 고리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부실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1870조 원을 넘겼고, 같은 기간 PF 대출 규모는 150조 원(증권사 PF 채무보증 24조1000억 원 포함)에 달한다.
특히 이번 부동산 PF 위기 상황을 2013년과 판박이라고 봤다. 2013년에도 가계부채가 962조 원에 달해 금융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국은행의 별도 설립을 제안했다. 한은은 가계부채가 대규모로 부실화되면 배드뱅크를 설립해 부실채권을 인수하고 채무조정도 광범위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10년 뒤인 2023년, 이제는 가계부채뿐 아니라 부동산 PF 부실 위기까지 겹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자 한시적으로 배드뱅크를 운영할 것이 아니라 상설 운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홍 의원은 부동산 PF 대규모 부실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비상계획)으로 ‘PF 배드뱅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인해 단기 시장에서 자발적 해소가 곤란한 PF 잠재 부실이 현실화하기 전에 신속하게 차단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 억제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PF 취급 관련 규제방안 마련 등 간접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배드뱅크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홍경식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은 “은행처럼 규모가 큰 곳은 부동산 금융 관련 리스크가 제한적이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은 자본적정성과 유동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새마을금고나 여전사, 보험사처럼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곳부터 부실이 소리 없이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배드뱅크 설립처럼) 이들을 위한 정책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부연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실장은 “이번에 민주당에서 제안된 법률 개정안에는 기금의 조성 방법을 과거 ‘부실채권정리기금’ 등과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를 상설화된 형태로 운영하면 공적 자금 투입이 민간부문에서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안정도약기금 조성과 관련해 현재 틀을 유지하되 일정 요건 하에서 타 기금으로부터 출연이나 대여받는 것이 가능한 형태로 입법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