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멀고도 가까운 일본…애정과 비난사이 [요즘, 이거]

입력 2023-03-21 16:05수정 2023-03-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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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참 묘한 이웃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웃으로 살아왔는데요. 이웃집에 있는 만화와 소품들은 어릴 적 함께한 추억이 가득하죠. 그 기억에 이웃집에 들르기라도 하면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른들 또한 그 집의 음식이 맛있다며, 집안이 예쁘다며 자주 방문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가고 싶지만 가기 싫은 곳, 추억이 있지만 끔찍한 기억도 있는 곳. 멀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 이야기입니다.

‘일본’이란 이 짧은 단어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너무도 극과 극인데요. 한 곳에서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한 곳에서는 울분을 토하기도 하는 정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죠.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최근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넘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는데요. 학창시절 북산고 고교 팀과 함께 했던 몽글몽글한 추억이 더해지며 얻은 결과였죠. 눈물을 흘리는 아빠를 목격했다는 자녀들의 격한 후기가 더해지며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도 성별도 뛰어넘는 인기를 보여줬습니다.

뒤이어 한국을 찾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도 흥행 속도를 높였는데요. 전작인 ‘너의 이름은.’ 보다 초반 스코어에서 앞서며 개봉 13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특히 슬램덩크조차도 첫 주에 100만을 넘기지 못했는데,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 첫 주에 이 기록을 넘어서며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죠.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 비난의 목소리도 더해지고 있는데요. 바로 코로나 이전부터 이어온 ‘일본 불매운동’과 관련됐죠. 2019년 7월 일본 아베 정권의 대한민국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라는 경제보복과 무역제재에 항의해 벌인 일본 상품 불매운동인데요. ‘NO 재팬’이라 불리며 일본 상품을 공유, 한국 대체상품까지 홍보하며 대대적인 국민운동으로 번졌죠. 불매운동으로 일본에서도 작년 동기보다 일본 기업에 대한 수출품이 99.9% 매출 하락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당시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도 뚝 끊기며 일본 여행지에서 한국 관광객 대상으로 감사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정치화와 민족주의, 선택적 불매운동의 비난도 일었지만, 효과는 있었는데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봉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 흥행에 일본 불매운동의 효과가 빛바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거죠. 일각에서는 “슬램덩크 보는 사람은 개돼지”라는 격한 비난까지 쏟아내고 있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일본 여행 또한 불매운동 이전을 회복했는데요. 일본정부관광국의 방일 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일본을 많이 찾은 외국인은 한국인(101만2700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NO 재팬이 아닌 YES 재팬’이 됐다고 표현하기도 했죠. 요미우리는 “(한국에서) 지난해 1월에 판매한 국제선 항공권 절반가량이 일본행으로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가 톱3이다”라며 “일본 식민 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을 기리는 3월 1일에도 일본행 항공편은 크게 붐볐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여행객들은 “선조들의 비극을 생각하면 원한과 악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으로 지금의 일본을 적대시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NO 재팬’을 외치는 청년세대도 많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발표한 ‘청년세대(MZ) 한일관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인상을 묻는 말에 5명 중 1명이 여전히 일본에 대한 반감을 품었죠.

이 상반된 의견이 온·오프라인에서 서로의 행동을 질책하며 뾰족한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최근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다나카상’의 열풍도 의외인데요. 개그맨 김경욱의 부캐인 다나카는 일본 호스트 출신의 한국 방송인인데요. 어눌한 한국어와 일본어의 조합, ‘일본인 호스트 출신’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지독한 설정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일본 특유의 어눌한 발음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있을 만한데도 일본 방송까지 진출하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죠.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TV’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뜨거운 인기인데요. 출연자는 일본의 부동산 업체 오너즈 플래닝 한국 지부 부장인 마츠다 아키히로(50)입니다. 마츠다 부장으로 불리죠.

한국에서 초중고, 군대까지 보낸 마츠다 부장은 한일 혼혈인데요. 자신은 일본 국적의 일본인이라고 밝히며, 활동하고 있죠. 잘생긴 외모와 저음의 목소리, 말끔한 패션센스로 남녀불문하고 인기가 많습니다.

두 일본인(?)이 유튜브를 휩쓸고 있는 지금, 그들에 대한 무한 사랑을 보내면서도 한쪽에서는 일본 불매, 일본 배척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이 쏟아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정치권도 시끄럽습니다. 최근 정부가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제3자 변제’를 밀어붙이며 불이 붙었죠.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양국 관계 정상화는 두 나라 공통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죠. 16일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NSC 차원의 경제안보대화도 출범하기로 했는데요. 2019년 관계 경색 국면에서 이뤄졌던 수출규제 조치와 WTO 제소도 철회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야권과 시민사회는 정부의 ‘제3자 변제안’과 일본의 반성과 배상이 빠진 정상회담 내용에 강하게 반발했는데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라고 거센 비난을 이어가고 있죠.

정말 어려운 존재. 애정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참 어렵고도 싫은 이웃 일본.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는 이 모든 과정이 지난 후에 역사로만 기록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뜨거운 두 의견이 오가는 복잡한 이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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