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토크] 혁신의 속도를 쫓아가려면

입력 2023-03-2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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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영 한국외국어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컨설팅 미래전략연구소장

전화기가 발명되고 전 세계적으로 1억 대가 보급되는 데 75년이 걸렸다. 인터넷은 7년, 우버는 6년, 페이스북은 5년, 챗GPT는 2개월이 걸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혁신 확산의 속도는 빨라지고, 기술 채택 곡선은 가파르게 변했다. 변화가 빠르다 보니 기업이 이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특히 ‘신속추격(fast follow)’과 가격 경쟁력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욱 곤혹스럽다. 이러한 근본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혁신의 확산이 긴 시간에 걸쳐 정규분포를 따른다면 신속추격 전략은 타당하다. 참고로 혁신 확산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주장은 1962년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 교수의 책 ‘기술의 보급(Diffusion of innovation)’에 나온다. 이 책에서 혁신의 확산은 혁신가, 얼리어답터, 초기 다수, 후기 다수, 후발주자 순으로 진행하며, 각각 2.5%, 13.5%, 34%, 34%, 16%를 차지한다고 보았다. 교수 이름은 생경하더라도, 혁신확산의 정규분포곡선은 잘 알려졌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3년 래리 다운스(Larry Downes)와 폴 누네스(Paul Nunes)는 ‘빅뱅 파괴(Big Bang Disruption)’에서 혁신이 정규분포곡선이 아니라 상어 지느러미 형태로 초기에 빠르게 수용된다고 주장했다. 상어 지느러미 형태란 종과 같은 모양의 정규분포가 아니라 초기에 급격한 혁신이나 기술의 수용이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챗GPT 사용자의 전례 없는 급증은 혁신의 확산이 상어 지느러미 형태를 따라간다.

빅뱅 파괴는 다른 학자에 의해 다른 이름과 형태로 반복되었다. 2016년 데이비드 로저스(David Rogers) 교수는 디지털 전환이 고객, 경쟁, 데이터, 혁신, 가치제안에 걸쳐 진행된다고 주장하며, 혁신이 8대 2의 법칙에서 2대 8의 법칙으로 변경되었다고 하였다. 8대의 2의 법칙은 기존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의 개선에 80%를 투자하고, 나머지 20%를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에 투자한다는 원칙이다. 2대 8의 법칙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혁신 비용이 줄어들었고 확산 속도가 빨라졌으며 상시화되어야 하므로,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에 80%를 투자하고 기존 비즈니스에 20% 투자하는 것으로 투자 배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3단계 전략시계(戰略時界) 모델(Three Horizons)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콜롬비아 대학 교수의 2019년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3단계 전략시계는 1999년에 처음 등장하여 전략 컨설팅 기업인 매킨지가 채용했다. 이 모델의 내용은 핵심 비즈니스에 70%, 새로운 비즈니스에 20%, 지금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에 10%를 투자하라는 원칙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란 기존 비즈니스를 새로운 기술로 혁신하는 것을 의미하며,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삼성이 팹리스에 투자하는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인 호라이즌 2에 투자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나,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SpaceX)와 스타링크(Starlink)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인 호라이즌 3에 해당한다. 블랭크 교수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므로 7:2:1의 투자 원칙을 버리고 호라이즌 2와 3에 집중 투자하라고 권한다. 그의 주장은 새롭지 않다. 스콧 앤서니(Scott Anthony) 등은 2017년 출간된 ‘이중 전환(Dual Transformation)’에서 호라이즌 2와 3의 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20년 라술 하디디(Rassule Hadidi)와 다니엘 파워(Daniel Power) 교수는 기술채택곡선이 종형의 정규분포 곡선에서 상어 지느러미 형태로 바뀌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필자는 2022년 ‘신성장 동력 탐색을 위한 미래예측’에서 호라이즌 2와 호라이즌 3 혁신 방안을 제안했다.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 기업 중 호라이즌 3 기업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사회의 미래성장동력이 크지 않고 챗GPT와 같은 혁신을 만들어 낼 동력과 역량이 없다는 뜻이다. 신속추격 전략이 준 달콤한 ‘성공의 함정’에 한국사회 전체가 빠져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급격한 혁신의 확산이 주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위 ‘관리의 삼성’과 같은 신화에서 탈피해야 하며, 사내정치와 같은 와각지쟁(蝸角之爭)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기업이, 한국의 공무원이, 한국의 정치가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볼’ 깜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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