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 19일 尹 사퇴 결정에…"정부 여당의 불법ㆍ악질적 권력남용"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가 내정된 지 20일 만에 후보직에서 공식 사퇴했다. 시장에서는 정치권 외풍에 연 매출 25조 원 규모 통신사의 최고경영자(CEO) 공백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빈 대표이사 자리는 직제상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사장을 대행(KT정관)하거나, 구현모 현 대표가 임시로 임기를 연장(상법)해 수행할 수 있다.
KT는 27일 "윤경림 사장이 차기 대표이사 후보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하고 이사회에 이 같은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KT에 따르면 윤 후보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사퇴하면서 3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는 대표이사 선임 안건이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또 정관에 따라 서창석 KT 네트워크부문장, 송경민 경영안정화TF장 사내이사 선임 건도 폐기된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22일 열린 이사진 간담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윤 후보는 "더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들은 정기 주주총회가 가까운 만큼 사퇴를 철회하고 버텨야 한다며 윤 후보를 만류했으나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결국, 주말까지 거취를 두고 장고를 거듭한 윤 후보는 이날 사퇴를 공식화했다.
윤 후보가 사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와 여권을 중심으로 한 사퇴 압박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에 대해 “구현모의 아바타”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구 대표의 친형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을 현대차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차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윤 후보가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 내사 등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KT는 구 대표가 두 번의 시도 끝에 연임을 포기한 것을 비롯해 정치권의 개입으로 지난해부터 세 차례에 걸쳐 차기 대표이사 선임 실패를 겪고 있다. 지난해 연 매출 25조 원을 달성했음에도 KT 주가는 글로벌 경제 위기에 더해 CEO 공백 우려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3일 윤 후보의 사퇴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주가가 전일보다 1.31% 하락했고, 24일까지도 하락세를 유지했다. 사퇴가 공식화된 뒤에는 횡보 중이다.
윤 후보를 지지하며 개인주주 1700여 명, 지분율 1.5% 수준의 의사를 모은 카페 회원들은 윤 후보의 사퇴 소식에 분통을 터트렸다.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사태가 불러올 여파에 대한 우려다. 한 주주는 "다음 CEO가 올 때까지 주가는 또 하락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주는 "희망이 점점 사라진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민간기업인 KT에 부당하고 불법적이며 악질적인 권력남용으로 낙하산인사를 꽂으려는 의도"라는 강도 높은 비판도 있다.
이들의 걱정대로 KT는 주요 의사결정이 멈춘 상태다. 지난해 말부터 조직개편과 임원인사 등이 이뤄지지 않아 상반기 사업의 정상 추진이 불투명하다. 최근 성과를 낸 '디지코 전략'의 존속도 알 수 없게 됐다. 민간 기업의 수장 자리가 정권의 개입에 좌우되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해외 투자자 등의 투자 불확실성도 커졌다. 새 CEO가 결정되더라도 이미 추락한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시장은 부정적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은 CEO가 부재한 가운데 경영 불확실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며 "기존 KT 임원 출신이 낙마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 올 CEO도 부담이 커질 것이고, 기존 KT가 구축해 놓은 역량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한편, KT새노조는 "회사가 사실상 업무 마비 상태"라며 "더 이상의 정치권 개입은 국민 기업 KT의 발전과 우리 사회의 건전한 기업 감시 시스템을 오히려 퇴행시킬 뿐"이라고 입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