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 혁신안도 회의적, 절반이 "보통"
경쟁 유도보다 금융 안정에 '초점'
올해 1분기는 금융권에 있어서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임기가 돌아온 금융지주 회장은 지난주 신한·우리금융지주를 끝으로 모두 물갈이됐다. ‘셀프연임’을 뿌리 뽑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지나친 ‘관치’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으로 웃었지만, 성과급·고배당 논란에 이어 대통령으로부터 ‘이자장사’ ‘돈 잔치’라는 뭇매도 맞았다. 정부의 ‘상생’ 주문에 은행을 중심으로 금리 인하책 등 ‘선물 보따리’를 쏟아냈지만, 대다수의 주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를 지나친 경영 압박으로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27일 본지가 35개 주요 금융사 CEO들을 대상으로 1분기 결산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CEO들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 주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이유는 일종의 배신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민간이 주도하는 ‘공정 혁신경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 정권에서 내걸었던 소득주도성장과 금융권의 희생 강요 대신 ‘민간의 자율 경쟁’에 맡기는 정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금융권에 가혹했던 시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은행은 공공재”라고 발언했다. 대통령의 공공재 발언 후폭풍은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을 불러왔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빅5’로 불리는 은행들의 과점화를 완화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즉각 꾸려졌다. 금융당국은 민간 금융사의 성과 보수 체계까지 손대기 시작했다.
CEO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성과보수나 배당 등에 관여하며 압박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금융사 CEO의 44%는 ‘금융당국의 성과보수 체계 점검이 불필요하다’고 봤다. ‘성과보수 체계 점검 필요성이 보통이다’라고 답한 CEO는 56%였다.
최근 금융당국이 TF를 통해 금융권 혁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는 것 역시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금융사 CEO의 절반(50%)은 금융당국 TF에서 내놓는 정책의 혁신성에 대해 ‘보통’이라고 답했다. ‘혁신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38.5%에 그쳤다. 11.5%는 ‘혁신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매주 열리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 역시 기대에 비해 알맹이가 없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 등 여파로 금융권의 건전성 이슈가 불거지면서 애초 계획대로 완전 경쟁을 유도하려는 정책 고민보다 금융 안정에 초점을 맞춘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TF에서 결정한 정책 대안들이 기존에 나오던 얘기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정작 TF 논의 테이블에는 다양한 혁신안들이 올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결과를 내놓기에는 한계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금융당국에서도 다양한 안건을 올려놓고 ‘제안된 안건 중 하나도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게 아니겠느냐”고 우려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부동산 PF발 유동성 악화가 이어지자 불합리한 규제를 완화해 유동성을 확대하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작년 10월 이후 이뤄진 한시적 시장 안정화 조치들에 대해서도 연장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당장 3월 말과 4월 말이 기한인 은행·저축은행의 예대율 한시적 완화 조치, 보험업권의 퇴직연금(특별계정) 차입한도 한시적 완화 조치 등은 6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다만, 금융사 CEO들은 이 같은 규제 완화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CEO의 36%는 ‘정부의 규제 완화책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보통이다’와 ‘어느 정도 체감한다’라는 응답은 각각 32%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규제 장벽이 더 허물어져야 할 부분으로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60%) 완화 △법정 최고금리 규제 완화 △디지털 시대 금융사의 겸업 허용 범위 확대 △금융사의 헬스케어 및 고령화 웰빙 사업 진출을 위한 규제 완화 △보험사 요양사업과 관련해 충분한 자본금을 갖춘 적격 사업자에 대한 민간부지 장기 임대 허용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