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한 근로시간 개편인가

입력 2023-03-29 06:00수정 2023-08-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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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혼선을 빚고 있다. 이달 초 고용노동부가 이론적으로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이 가능한 안을 내놓자 노동계가 불만을 쏟아내면서다. 초경쟁에 내몰린 산업계의 환경을 고려해 ‘바쁠 때 많이 일하고 상대적으로 한가할 때 몰아서 쉴 수 있다’는 게 정부 개편안의 취지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당장 직장맘·직장대디들은 출산율을 높이겠다면서 육아를 더욱 힘들게 하는 ‘엇박자 정책’이라고 토로한다. MZ 노조도 “사실상 연장근로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제도”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 정부는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의견 청취를 하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일부 언론이 극단적인 경우만 부각해서 취지가 왜곡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바꿔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해서 근로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는 게 골자인데, 여론이 개편안에 담긴 ‘주4일제’는 물론 ‘안식월’에 ‘시차출퇴근’도 가능하다는 내용은 쏙 빼고 ‘주 69시간’에만 주목해 억울하다는 것이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사실상 상한 캡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근로시간 개편은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이므로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정책 기획의 실책인지, 제도 설계의 실수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현상만 보면 최소한 정책 홍보의 실패에는 가까워 보인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간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제50조)고 규정한다. 또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둬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52시간(하루 12시간)을 초과해선 안된다(제51조)고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일몰된 단서 조항(제53조)은 30인 미만 사업장에 1주에 8시간 이내에서 연장근로를 허용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까지 3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는 주당 최대 60시간 근무가 가능했다. 하지만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아 이 조항이 지난해 말 그대로 일몰되면서 소규모 사업장은 졸지에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며 ‘아우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국내 30인 미만 사업장 수는 243만2682개로 전체 사업장(251만1690개)의 96.9%에 달한다. 근로자로 따지면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수는 649만7651명으로 전체 근로자수(1455만33명)의 44.7%다. 국내 법인의 97%,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여기에 속한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캡’ 주 60시간은 일몰된 ‘30인 미만 사업장 연장근로 조항’과 다를 바 없다. 반면 정부의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은 ‘11시간 연속휴식’을 따르지 않을 경우 주 64시간을 상한으로 잡고 있다. ‘사실상 연장근로를 더 많이 하는 제도’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결이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포르투갈(1997년)과 이탈리아(1998년)가 이미 지난 세기말에 주 40시간으로 단축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2000년, 주 35시간), 벨기에(2001년, 주 38시간), 슬로베니아(2003년, 주 40시간) 등도 근로시간 단축 개혁에 합류했다. 지난주엔 칠레 상원도 주 45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고용부가 이번 개편안 설명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는 OECD 국가보다 연간 약 39일을 더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기대처럼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때 생산성이 높아질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OECD는 ‘2022 고용 전망’ 보고서에서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근로시간 단축이 1인당 생산성 증가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내놨다. 또 근로시간 단축이 세심하게 설계·구현된다면, 고용과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근로자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근로시간 개편의 핵심이 생산성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에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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