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은행위기, 2008년 데자뷰가 아니길 바란다

입력 2023-03-2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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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돌아보면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 6개월 전에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먼저 파산하며 전조를 알렸다. 지금 미국, 유럽의 은행권 위기가 2008년과 데자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세계적으로 은행 시스템 불안정 우려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물론 유례없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예견된 부작용이다. 미국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고, 대륙을 건너가 크레디트스위스(CS)의 위기가 고조되더니 급기야 독일 도이체방크까지 우려의 불길이 옮겨붙는 모습이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는 SVB 사태가 자본시장의 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주된 근거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융 불안에 대처하는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어 온 만큼 처리나 대응이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또한, 미국 대형은행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욱 강화된 규제 때문에 건전성이 한층 강화됐다.

실제로 SVB 사태 이후 대응이 전격적이고 신속하다. 미국 정부가 예금자 전액 보호 결정을 내놓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은행이 보유한 국채와 기관채 등을 담보로 대출 지원에 나섰다. 이후에도 JP모건 등 대형은행 11곳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에 총 300억 달러를 예치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에서는 크레디트스위스 위기에 대응해 스위스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과 UBS의 인수 결정이 뒤따랐다. 또한, 연준은 은행권 위기에 지속 대응하기 위해 영국, 유로존, 캐나다, 일본, 스위스 중앙은행에 달러 공급이 확대되도록 통화 스와프 운용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지방 및 중소은행을 중심으로 뱅크런(예금 인출) 압박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유동성 불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은행권 불안과 정책당국의 유동성 보강 조치가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 은행권 불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연준은 금리를 올리면서 유동성도 공급하는 모순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의 양적 완화와 정부의 재정 지출이 맞물리면서 시중 유동성이 확대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연준의 지원으로 은행의 유동성이 증가하겠지만 은행은 재무상황 개선에 무게를 둘 것이고, 민간 신용으로 창출될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은행들에 대한 정책 당국의 규제와 건전성 개선 요구로 인해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할 수 있고, 민간 대출이 둔화될 수 있다.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은행을 중심으로 한 은행권 불안과 보수적인 신용 여건은 시차를 두고 기업들의 자금 조달과 재무 건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부채는 2020년을 정점으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지만, 2022년 말 기준으로 보면 코로나19 이전보다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SVB 사태가 보유자산의 투자 손실로 인한 파산이라고 거론되지만, 본질적으로는 높은 금리에 따른 부작용으로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으로부터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재무상태와 실적 악화 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 압력이 커질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은행권의 유동성 불안 이후에는 기업 부채 문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자면 정책 당국의 신속한 대응을 고려할 때 과거 금융위기 및 급격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게 전망하고 있지만, 은행권 불안 이후 대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나 가계의 건전성이 약화될 수 있고, 이에 따른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경우 미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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