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채무 현금보다 8배 많아…"불황 장기화하면 위험 확대"
부동산 시장의 불황이 계속되면서 건설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미분양이 이어지면 위험 우발채무가 더욱 늘어나고 건설사의 재무 부담도 확대될 수밖에 없어서다.
31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주요 11개 건설사의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약 94조 원에 달한다. 현금 유동성 12조 원의 8배 수준이다. 우발채무는 일정 조건이 되면 빚이 되는 것으로, 일반 도급 사업 PF, 책임준공 미이행 시 채무인수, 정비사업 사업비, 중도금 대출 등이 건설사의 부동산 PF 우발채무에 해당한다.
건설사별로 보면 현대건설의 우발채무 규모가 25조 원으로 가장 크다. GS건설(14조5000억 원), 롯데건설(13조 원), 대우건설(10조 원)은 10조 원대 규모로 이 역시 적지 않은 수준이다. 이어 포스코건설(8조 원), 태영건설(7조5000억 원), HDC현대산업개발(6조 원), KCC건설(3조 원), 동부건설(3조 원), 코오롱글로벌(2조 원), HL D&I 한라(1조5000억 원) 순이다.
전체 우발채무 가운데 일반도급사업 관련 브릿지론과 본 PF 중 연대보증, 채무인수 등 위험성이 높은 '요주의 우발채무'는 20조 원 정도다. 요주의 우발채무 규모가 큰 곳은 현대건설, 롯데건설, 태영건설 등이 꼽힌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분양 성적이 좋지 않아 채무로 확정될 '위험 우발채무'는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건설은 브릿지론 관련 사업장의 90%가 서울에 위치해 있다.
롯데건설과 태영건설은 위험 우발채무 부담이 큰 상황이다. 대구, 인천, 대전, 울산 등 미분양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사업장이 있는 데다 우발채무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을 웃돌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의 위험 우발채무는 1조6000억 원이고 현금 유동성은 6800억 원이다. 태영건설은 각각 5600억 원, 1400억 원이다.
다만 이들도 계열사 지원, 금융회사와의 투자협약 등의 방안을 마련해 단기적으로는 큰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한동안 부동산 시장이 본격 반등세를 보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전매제한 기간 단축, 실거주 의무 폐지 등으로 서울 인기 지역은 수요가 몰리겠지만 나머지는 미분양이 속출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올해 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7만5438가구로 전월 7만5359가구에 비해 0.1%(79가구) 증가했다. 이는 정부가 위험선으로 제시했던 6만2000가구를 크게 웃도는 수치고, 미분양의 84%가량은 지방에서 발생했다. 서울은 1000가구를 밑돈다.
LH토지주택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분양이 수개월 내에 10만 건을 돌파할 것으로 봤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특히 순차입금과 위험 우발채무 규모가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건설사들이 시장 침체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는 롯데건설과 태영건설, 동부건설, 코오롱글로벌, HL D&I 한라 등이다.
홍세진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업황 침체가 1년 넘게 이어지면 미분양 등으로 위험 우발채무가 대폭 증가하고, 신규 착공 사업장의 분양률이 낮아도 추가적인 재무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며 "건설사들의 총차입 규모를 고려할 때 자금 조달 상황 악화 시 현금 유동성은 빠르게 소진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