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1일 찾아오는 만우절은 가벼운 거짓말이나 악의 없는 장난이 용인되는 날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까운 사람을 골탕 먹이는 소소한 재미로 하루를 보내죠.
만우절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입니다. 1560년대 프랑스인들은 3월 25일부터 4월 1일까지 춘분제를 열고 신년을 축하했는데요. 축제 마지막 날엔 선물을 교환하며 새해 인사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샤를 9세가 1564년 달력 계산법을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면서 신년도 1월 1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4월 1일에 선물을 교환하고 신년을 축하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4월 1일이 신년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장난을 쳤다는 겁니다. 달력 변화를 알지 못한 사람들을 ‘에이프릴 풀스(April Fools)’라고 부르면서요.
만우절은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만우절을 이틀간 보내기도 했고, 그리스에서는 만우절 장난에 성공하면 1년 치의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만우절을 앞두고 이색적인 한정판 상품을 출시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최근 빙그레는 아이스바 ‘바밤바’의 스핀오프 격인 ‘벼볌벼’를 출시했습니다. 바밤바는 오랜 기간 해태의 스테디셀러로 자리해왔습니다. 밤 맛 아이스바답게 ‘밤’이라는 단어를 강조해 이름을 지었는데요. 2020년 해태제과의 빙과부문(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한 빙그레가 이를 비틀어서 만우절 시즌 상품을 내놓은 겁니다. 이름에서부터 웃음이 터지는 이 아이스바는 ‘벼’가 강조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쌀 맛을 낸 상품입니다.
바밤바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배뱀배’가 소비자들과 만났습니다. 배뱀배는 바밤바처럼 생겼지만, 과일 ‘배’ 맛이 나는 아이스바입니다. 역시 지난해 만우절쯤 출시돼 화제를 빚었죠. 배뱀배에 이어 벼볌벼까지, 소비자들은 “이름이 어쩐지 얄밉다”면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또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농심 라면 ‘너구리’를 귀걸이로 재현해 화제가 됐습니다. 귀걸이 한 쪽은 봉지 라면 너구리를, 다른 한쪽은 꼬불꼬불한 면발을 작게 줄여 만든 모습입니다. 푸드테크 기업 쿠캣은 만우절을 기념해 29일부터 온라인몰에서 ‘농심 얼큰 너구리 멀티팩 2개 세트’를 구매한 고객에게 너구리 라면 귀걸이를 무료로 증정했습니다. 귀걸이 사진을 본 많은 누리꾼은 “만우절이 일찍 왔다”며 고개를 내저었는데요. 한 소비자가 “귀걸이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 올린 후기가 등장하면서 모두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쿠캣 측은 “너구리 면발을 구현한 부분은 쿠캣과 농심 직원들이 직접 한땀 한땀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며 “마치 너구리 라면 봉지와 면발을 귀에 걸고 다니는 듯한 재미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이게 왜 진짜냐”고 반문하면서도 재밌어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CGV는 만우절을 맞아 ‘전국 CGV高 낙시제(樂詩제)’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만우절 당일 교복이나 Y2K(2000년대) 의상을 입고 전국 CGV에 방문하면 일반 2D 영화를 7000원에 볼 수 있는 행사입니다. 한국 피자헛은 스페셜 한정판 피자를 4월 8800원에 판매합니다. 더핑크퐁컴퍼니는 만우절 스핀오프 ‘국그릇핑크퐁’ 뮤직비디오를 오늘(31일) 오후 6시 공개합니다.
만우절은 기업들의 기회기도 합니다.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제품 개선이나 신제품 출시 등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마련할 수 있는 건데요.
실로 팔도는 2015년 만우절 이벤트로 ‘팔도 비빔면 1.5인분을 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반응은 예상과 달랐죠. 소비자들이 ‘하나 먹기엔 아쉽고 두 개 먹기엔 많다’며 이 소식을 반겼던 겁니다. 이후 팔도는 증량 제품 출시를 고민했고, 이듬해 기존 비빔면의 양을 20% 늘린 한정판을 출시하며 화제를 빚었습니다.
한국야쿠르트는 ‘얼려 먹는 야쿠르트’를 출시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야쿠르트를 먹는 방법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요. 야쿠르트를 얼려 작은 포크 등으로 긁어먹거나, 야쿠르트의 밑동에 구멍을 내 거꾸로 마시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아예 기존 야쿠르트의 모양을 뒤집어버렸습니다. 기존 야쿠르트보다 넓은 부분에 뚜껑이 있어 얼려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퍼먹기 좋도록 설계됐죠.
이처럼 많은 기업은 만우절을 하나의 ‘마케팅 대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만우절로 홍보 효과도 누리고,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제품 개선·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생겼던 사적 모임 제한과 마스크 착용 의무 등이 해제되며 일상 회복으로 성큼 다가가 만우절에 대한 기대가 더 큰 상황인데요. SNS를 달굴 기업들의 재미난 장난에 관심이 모입니다.
재치 있는 만우절 장난은 기업 이미지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선 넘은 장난은 비난을 부를 수 있습니다.
2021년 3월 29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Volkswagen) 미국 지사는 홈페이지에 사명을 ‘볼츠바겐’(Voltswagen)으로 바꾼다는 보도 자료를 게재했습니다. ‘k’를 ‘t’로 변경하면서 전압 단위인 볼트(Volt)를 포함한 건데요. 직후 관련 뉴스가 쏟아졌고 트위터 등 SNS에서도 이 내용이 확산했습니다.
이는 폭스바겐이 사명까지 바꾸면서 전기차 사업에 집중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주가 급등을 불렀습니다. 당시 뉴욕 증시에서 폭스바겐 주가는 장 중 한때 12%까지 치솟았다가 만우절 거짓말로 판명된 뒤 소폭 내려 9% 상승으로 장을 마쳤죠.
폭스바겐은 뒤늦게 “브랜드명 변경 발표는 만우절 정신에 따른 농담이었고, 미국에서 출시되는 첫 순수전기차 ID.4 홍보 차원에서 벌인 일”이라고 해명했으나,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의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주가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 넘는 거짓말’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설악산 흔들바위를 외국인 관광객 여러 명이 밀어 떨어뜨렸다는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설’은 매년 반복돼 조금은 익숙하지만, 실명을 거론한 유명인들의 이혼설, 사망설 등 각종 거짓말은 여전히 경악을 자아냅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 이슈와 관련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며 만우절을 더욱 유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죠.
경남경찰청은 30일 일상생활에서 허위·장난으로 112 신고를 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겠다며 엄정히 대응할 방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의가 명백하고 중대한 허위신고나 경미한 신고라도 상습성이 있으면 1회라도 공무집행방해 또는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하거나 즉결심판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죠.
경찰서와 소방서는 1990년대까지 장난 전화로 만우절마다 골머리를 앓아왔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장난·허위 신고를 하는 것은 ‘거짓신고’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합니다. 형법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죠.
강력한 조치로 허위·장난 신고는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경찰 측은 공권력 낭비를 방지하고자 이후로도 허위·장난 112신고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할 계획입니다.
가벼운 장난과 무해한 거짓말로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가짜 뉴스와 같은 허위사실 유포, 장난·허위 신고 등은 엄연한 불법 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