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헌 부동산부장
당장 국민들은 좋아했지만 우유 생산업자들은 이익을 낼 수 없자 젖소들을 모두 도축해 버린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생산원가를 낮춘다며 사료값에도 상한제를 적용한다. 사료 생산업자들 역시 사료 생산을 포기하자 결과적으로 우윳값은 폭등하게 되고 귀족들만 암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우유를 사먹을 수 있게 됐다.
로베스페이르의 예는 경제학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이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이는 우리 부동산 시장에도 대입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분양가 상한제다.
분양가상한제는 공동주택의 분양가를 산정할 때 일정한 표준건축비와 택지비(감정가)에 가산비를 더해 분양가를 산정하고,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즉 정부가 정해준 가격 이상은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이고 실수요자들을 위한 정책 같지만 소수의 로또 당첨자를 양산하고 전 국민을 로또 아파트 광풍으로 몰아넣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게 시장경제다. 때로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시장을 망가뜨린다. 인위적으로 낮춘 가격 때문에 기업들이 제품 공급량을 줄여 향후 제품가격 폭등을 초래할 수 있고, 정부의 압박으로 묶인 가격하에서 기업들은 제품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는 최소한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전 정권은 무려 25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켰다. 다행스러운 점은 고사상태에 있던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정상화되는 시그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 정상화를 향한 길은 요원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만 여야 대치가 길어지며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는 분양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 정책을 내놨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며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다주택자의 취득세 중과 완화 법안 역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정부안이 발표된 지 3개월이 흘렀음에도 법 실행까지 가는 길이 멀어 보인다. 부동산 핵심 개정안들도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개정안은 지난달 들어서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어갔다.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 4개월 만이다.
가뜩이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장에서 정부 정책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시장 정상화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제대로 된 법안 논의를 위해 속도를 내야 한다. 하나씩 바꿔 나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건설업계의 현장관리 방법 역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특별법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늘어난 것을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무리한 법안이라는 볼멘소리도 많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무리한’이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시장 과열을 이유로 집과 땅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토지거래허가제 역시 해제 기일을 앞두고 있다. 사유재산 거래를 위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시대적 제도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관료가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없었으면 한다. 하루에만 30%의 등락이 가능한 주식시장은 어떻게 두고 보는 것인가?
이제는 구태를 벗어나 정말 근본부터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부동산이 올라야 한다는 의견보다 안정되기를 바라는 수요가 많은 지금이 지나친 규제를 해제하고 잘못된 법안들을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격에 연연하기보다는 시장 건전성에 포커스를 맞추면 회복은 더딜지 모르지만 건강한 시장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나를 따르라’는 구호만으로는 거친 시장을 이겨내기 힘들다. 진정 필요한 정책을 내놓고 국민 앞에 나서서 “내 결단을 꾸짖어 달라”고 고개 숙이는 진솔한 행동이 국민의 공감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car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