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산·조선업계에 어제 낭보가 전해졌다. 유럽연합(EU)이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승인한 것이다. 승인 날짜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이다. EU는 18일쯤 심사결과를 통보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반가운 통보를 3주 가까이 앞당겼다. 기업결합 심사는 통상 몇 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조기 결정이 나온 건 이례적이다. 이번 결합으로 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없다고 봤기에 신속하게 처리됐을 것이다.
한화는 지난 2008년 1차 시도에 이어 지난해 9월 다시 대우조선 인수에 뛰어들었고, 12월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인수안이 승인되면서 본계약을 체결했다. EU의 승인으로 대우조선 인수를 가로막는 난관은 거의 다 사라졌다. 한화는 지난해 12월 19일 8개국 당국에 기업결합 승인을 신청한 이래 2월 튀르키예(터키)를 시작으로 영국, 일본, 베트남,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차례로 승인을 받았다. 이제 남은 관문은 단 하나다. 대한민국의 공정거래위원회만 오케이를 하면 기업결합 방정식이 완성된다.
바로 이 지점이 눈길을 더한다. 무엇보다 쉽게 이해가 안 되는 탓이다. 왜 하필 우리나라의 공정위가 마지막까지 남아 승인을 미루면서 꾸물대는 것인가. 군사작전과 마찬가지로 기업결합도 속도가 중차대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기간에 해당 기업이 추가로 떠안을 금융비용과 각종 리스크만 해도 엄청나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는 것인가. 여러 질문을 낳는 공정위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어제 오후 보도진에게 군함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취지의 배경 설명을 했다. 한화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란 시사도 했다. 공정위가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이 대두될 가능성을 의식한 긴급 대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관리하는 방산업 특성상 이번 결합에 경쟁 제한 요소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기 어렵다는 것은 한화만이 아니라 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또 한화 관계자는 어제 “(공정위 측의) 협의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명쾌한 해명이 필요하다.
국내 방위산업계는 최근 K방산으로 불릴 만큼 수출효자종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 LIG넥스원, 대우조선, 현대로템 5개사의 방산 수주 잔액은 지난해 말 100조 원을 돌파했다. 국가기관이 새 보물창고인 K방산의 발목을 잡아도 되는지 의문이다. 주요 경쟁국들마저 승인한 사안 앞에서 계속 꾸물댈 이유가 없다. 대승적 결정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