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中 의존도 낮춰 리스크 해소
공급원 다변화, 공급가 상승으로 이어져
美시장 가격경쟁력 만큼 매출원가율 중요
미국 재무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부 규칙을 개정하면서 한국사 전기차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다만 내년까지 배터리 부품, 2025년까지 핵심 광물 공급원의 개편 등이 숙제로 남았다.
극단적인 중국 의존도를 낮춰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다는 순효과가 존재하는 반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품 가격 상승, 나아가 매출 원가의 상승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4일 자동차와 무역업계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보면 미국의 IRA 시행세칙 개정은 한국산 전기차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 제조사들은 미국 친환경차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경영전략을 확정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앞서 미국 정부는 배터리의 핵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하나의 ‘부품’으로 규정했다. 결국, 이를 중국산에 의존해온 국내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서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우려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세칙 개정으로 양극재와 음극재는 부품이 아닌 ‘광물’ 즉 원자재로 인정했다. 예컨대 배터리 핵심 원자재를 중국에서 가져와 한국에서 가공하면, 미국 현지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리튬, 니켈, 망간, 흑연, 코발트 등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을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해도 한국에서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지금 당장은 한숨을 돌렸으나 2025년까지 풀어야 할 숙제도 남았다. IRA는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외국 우려 단체'에서 조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당장은 값싼 중국산 핵심 광물을 한국에서 가공해 쓸 수 있지만 2025년부터는 이조차 아예 막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극단적인 중국 의존도를 낮춰 핵심 광물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국내 제련기술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원가 상승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자동차 업계가 떠안게 됐다. 공급처를 여럿으로 분산하면 당연히 가격은 상승하다.
물론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판매를 늘리는 것으로 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함께 빠르게 전기차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유럽과 신흥국에서 대응 능력까지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바로 매출원가 상승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 기준, 매출 대비 매출원가는 최근 6년 사이 지속해서 하락했다. 고급차와 SUV 판매가 늘어나면서 매출이 매우 증가했고, 이들의 부가가치가 높다 보니 매출원가 비율은 소폭이지만 우하향 추세를 이어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81.7% 수준이었던 현대차의 매출원가 비율은 이듬해인 2018년 84.3%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 무렵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SUV 등 차종 다양화를 앞세워 시장을 확대했고, 이는 곧 뚜렷한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2019년 현대차는 처음으로 연간 매출(105조7464억 원)이 100억 원대에 진입했다. 매출이 크게 늘면서 매출 원가는 상대적으로 전년 대비 1.0% 포인트 하락한 83.3%로 내려왔다.
이후 3년만인 지난해 매출은 142조5275억 원으로 34.8%나 증가했지만, 매출 원가는 1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덕분에 매출원가율은 80.1% 수준까지 묶어둘 수 있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공급망 다변화로 인한 매출원가의 상승보다 미국 시장 전기차 가격경쟁력 확보가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라면서도 “중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도를 낮춰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불가피하게 상승할 수밖에 없는 전기차 매출원가 상승 가운데 어떤 게 더 이득인지 따져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 대부분 이번 IRA 시행세칙 개정으로 한국차에 순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도 전기차 시장이 미국에서 유럽과 신흥국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에 대한 원가율 고민도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따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조성대 실장은 “재무부의 IRA 시행지침이 우리 기업의 부담을 덜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평가하면서도 “다만 IRA 및 시행지침의 혜택이 한시적임을 확인한 만큼 체계적인 공급망 전환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