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고 있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4일까지 나흘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이 58건에 이릅니다. 2일 하루에만 산불 34건이 발생했죠. 문제는 빈도가 느는 와중에 대형 산불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일 오전 시작된 충남 홍성과 대전 일대에 발화한 산불은 사흘이 지나서야 큰불이 잡혔습니다. 2002년 청양·예산 일대 산불에 이어 역대 2번째 규모죠. 홍성·대전·당진·보령 4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한 피해 예상 면적은 축구장 3200개 넓이에 달합니다.
3일 낮 전남 함평과 순천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밤새 불길이 잡히지 않고 확산했습니다. 이에 소방 당국은 ‘대응 3단계’를 발령했는데요. 광역단위 가용 인력 및 진화헬기를 총동원하는 3단계 방침에 따라 헬기 9대, 진화인력 750여 명, 장비 62대 등이 동원됐습니다.
산림청이 발표한 2021년 산불통계 연보에 따르면 이렇게 규모가 큰 대형 산불은 2017년 이후 매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피해 면적 100㏊(헥타르) 이상 대형 산불은 매년 2~3건씩, 평균 2.6건이 발생했는데요. 100㏊는 불 하나당 피해 규모가 축구장 140개에 맞먹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번 달에만 피해 면적 100㏊ 이상 산불 5건이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1985년 산불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봄에 산불이 빈발하는 건 고온건조한 기후 때문인데요. 기후 변화로 높은 낮 기온과 건조한 날씨가 오래 이어지며 산불이 번지기 쉬운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산림청은 “올해 봄 날씨가 예년보다 일찍 따뜻해지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봄철 산불이 집중되는 시기가 빨라졌다”고 밝혔죠.
실제로 올봄은 3월에 반소매를 꺼내 들 정도로 이례적으로 따뜻했습니다. 서울은 3월 25일 낮 기온 25.1도를 기록해 관측 이래 역대 최고 기온을 세웠습니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 3월 서울 최고기온은 22.1도였죠.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지난 3월은 △평균 기온 9.8도 △평균 최고기온 16.2도였는데요. △평균 기온 5.1도 △평균 최고기온 10.8도였던 2013년보다 각 △4.7도 △5.4도 오른 수치입니다.
이렇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지면 상대습도가 낮아져 산불이 발화하기 쉬워집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공기가 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인 ‘포화수증기압’이 높아지는데요. 공기 중 수증기 총량은 그대로더라도 상대적인 습도는 낮아지게 됩니다. 이에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가 건조해지는 거죠.
전문가들도 기후 변화가 산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짚었습니다. 2022년 2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변화와 산불은 ‘상호 악화’ 관계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대형 산불이 최대 1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죠. 국립산림과학원도 1월 발표를 통해 온도가 1.5도 증가하면 산불 기상지수(산불 발생에 최적인 기상 조건을 나타내는 지수)가 8.6% 상승한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극심한 기후 변화로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현재 입산을 통제·제한하는 ‘산불조심기간’은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인데요.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 산불조심기간이 1월부터 시작되거나, 나아가 한겨울에도 대형 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입니다.
산불을 식혀 줄 단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르게 핀 벚꽃이 비바람에 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요. 벚꽃이 이렇게 빨리 피는 것도 이상 기후와 관계있습니다. 애초 올해는 지난해보다 2~3일가량 늦은 3월 22일 제주 서귀포를 시작으로, 서울은 4월 3일에서야 꽃이 필 것이란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이르게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죠. 부산(수영구 남천동 기준)에서는 3월 20일 개화가 시작해 24일 꽃이 만발했습니다. 서울(영등포구 여의도동 기준)도 같은 달 26일 개화를 시작해 30일에는 이미 벚꽃이 흐드러졌죠. 남한 북단인 춘천 소양강댐 인근 벚꽃도 4월 2일에는 활짝 피었습니다. 이는 2021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이른 벚꽃 개화입니다. 이렇게 이른 개화의 원인 역시 높은 기온이죠.
예상보다 일주일 가까이 빠른 벚꽃 만개에 지자체와 지역 상인들은 실망이 큽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벚꽃 축제를 재개한 지역들이 많은데요. 만반의 준비가 무색하게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열어야 할 상황입니다. 서울 벚꽃 군락지의 대표 명소인 여의도 일대에서는 서울 영등포구가 주최한 영등포여의도봄꽃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재개된 축제인데요. 4월 3일 벚꽃 개화 예정일에 맞춰 4월 4일부터 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길거리에는 이미 비에 젖은 벚꽃이 떨어져 있습니다.
대청호 벚꽃 축제를 준비한 대전광역시 동구에도 이미 벚꽃이 만개했는데요. 7일부터 9일까지로 예정된 축제 때 벚꽃 구경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동구 측은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축제’라며 아쉬운 마음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들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벚꽃 축제 측은 벚꽃이 없더라도 준비한 축제 프로그램들과 함께 다양한 봄꽃을 즐길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공언했는데요. 봄이 사라진다는 전망도 나오는 요즘, 내년 벚꽃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지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