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 있다는 세계은행(WB) 경고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WB는 최근 ‘장기 성장 전망 보고서’를 내고 세계 경제 잠재성장률이 2030년까지 연 2.2%로 떨어져 30년 만에 최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생산성 둔화·투자 위축의 부정적 효과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만나 극대화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WB 측은 “잃어버린 10년이 찾아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과 같은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경기침체 시련에 직면할 것이란 적색등을 켠 것이다.
WB의 ‘잃어버린 10년’ 경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2021년에도 비슷하게 전망했다. 이번 경고가 한층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WB가 지적한 고령화 등 세 가지 변수가 대한민국을 더욱 통렬하게 뒤흔드는 탓이다. 고령화만 보더라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사회다. 동전의 뒷면인 저출산 또한 압도적으로 심각하다. 인구통계학 함정에 빠져 출구를 못 찾는 국가인 것이다.
투자 위축, 생산성 저하라는 나머지 두 측면에서도 한국은 내세울 게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제조업 조사대상 1542개 기업 중 번 돈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418곳이나 된다. 이른바 ‘좀비기업’이 27%에 이르는 형국이다. 골병이 단단히 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제조업 강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
WB가 제시한 세계 잠재성장률은 연 2.2%지만 우리 잠재성장률은 그에 못 미치는 2% 전후로 추정된다. 더욱이 수출·내수 부진에다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올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기관들은 유독 한국 경제 전망만 1%대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심지어 OECD는 획기적 정책 변화가 없다면 2033년 잠재성장률이 0%대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본다. 기획재정부가 그제 공개한 아시아개발은행(ADB)의 ‘2023년 아시아 경제전망’을 봐도 한국 전망치는 최하위권인 1.5%에 그친다. WB 경고를 무심히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WB는 금융위기가 터지면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선, 원화 가치 보호에 주력하면서 금융 위기를 막을 방파제를 견고히 쌓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는 단기적으로 어쩔 수 없더라도 WB가 적시한 나머지 두 성장 변수마저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전략산업 지원책부터 속히 마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