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강풍과 집중호우가 계속되며 해안, 산지, 저지대, 도심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속출했다. 범람, 침수, 산사태, 도로유실 등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름 장마철 많은 지역에서 집중호우의 빈도와 강도 증가로 많은 인명·재산 피해가 있었다. 반면 광주와 전남은 최근 비가 오지 않아 문제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를 우리 국민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중남미 역시 많은 나라가 기후변화에 취약하지만, 특히 중미 국가는 태평양과 카리브해 사이에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후변화로 중미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하는 엘니뇨 남방진동의 폭이 커지고 엘니뇨와 라니냐가 번갈아 발생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데, 이에 따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를 비롯한 중미 국가의 기온과 강수량 패턴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기온과 강수량 패턴의 변화로 중미 국가의 국토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조 회랑 지대에서는 폭염이 빈번해졌으며, 가뭄과 집중호우가 번갈아 발생하고 있다. 가뭄과 집중호우로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일은 중미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 된 지 오래다. 해안 지대는 폭풍과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해수면이 계속해 상승하는 상황에서 극한기후 현상으로 인한 충격은 가중되고 있다. 2020년 연달아 발생한 허리케인 에타와 요타는 중미 지역에서 수백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키고 수자원, 농업, 주거, 인프라 등 여러 부문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중미 국가에서는 지리적인 이유로 기상요소의 변화가 극적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기후재해의 충격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를 제외한 중미 국가 대부분은 경제발전 수준이 낮고, 기후변화 취약성이 높은 빈곤 인구의 비중이 높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많아 인구밀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국가도 많다. 경제발전 수준이 낮고, 빈곤 인구 비중이 높으며,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기후변화 취약성이 증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대부분 국가가 사회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기후재해에 대한 대응 및 피해 복구 역량도 부족하다.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 역시 중미 국가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높인다. 농업은 기후변화로부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제 부문이다. 기온과 강수량 패턴과 같은 기상요소의 변화와 이에 동반되는 홍수, 폭풍, 가뭄, 산사태, 이상기온 등은 농작물의 수확량 감소와 부가가치 저하를 불러온다. 기후변화는 중미 지역 농업인구의 자급자족을 위협하고 소득 감소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수출까지 큰 폭으로 감소시킨다.
여기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점이 있다. 중미 국가의 국민은 세계 곳곳을 덮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이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적은 이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대가를 크게 치르고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다. 글로벌 중추 국가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우리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내외적 노력에 더해 중미 국가와 같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경감시키는 데 필요한 재정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미 국가에 대한 지원을 넓히는 것은 이들 국가의 원조 수요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일이다. 중미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세력 싸움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중미 협력 정책방향 수립과정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우리다. 전 지구적 과제이자 지정학적 현안과 무관한 기후변화 적응 분야에서의 공적개발원조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