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어제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어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회간접자본(SOC)과 국가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해 총사업비 500억 원·국가 재정지원 300억 원 이상인 예타 기준을 1000억 원·500억 원 이상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여야 합의 추진이니 기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관문을 넘는 것은 여반장이나 다름없다. 막대한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을 예타 없이 밀어붙일 통로가 곧 뚫리는 것이다.
예타 면제 기준 완화는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24년 만이다. 그간의 물가인상을 고려하면 필요성이 인정될 수도 있지만, 결정적 흠결을 숨기지 못하니 국민 반감을 부를 수밖에 없다. 여야는 애초에 기준 완화가 재정 주름살을 키우는 점을 의식해 재정준칙 법제화도 동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관리토록 강제하는 것은 현재의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들딸 세대의 부담 경감을 위해서도 더 늦춰서는 안 될 입법과제이니, 합리적인 잠정 합의였다.
하지만 어제 소위를 통과한 것은 기준 완화뿐이다. 여야가 쟁점법안이라며 재정준칙 법제화를 쏙 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4월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조차 거의 없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사회적경제기본법 통과 요구를 내세우면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나라 곳간의 빗장을 푸는 예타 면제 기준 완화는 처리되고 재정준칙은 방치되면 어찌 될까. 전국이 선심성 개발 사업으로 뒤덮이게 마련이다. 내년 총선이 불과 1년 앞이다. 포퓰리즘 광풍을 막을 방도가 어디 있겠나. 설혹 있다 하더라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되기 쉽다. 여야는 그러잖아도 불요불급한 지역 공항들을 신설한답시고 초당적 협력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대학생 1000원 아침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타 면제 기준까지 완화되면 여야가 또 어찌 오남용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국가 재정엔 이미 적색등이 켜져 있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 66조7000억 원 증가할 전망이다. 1분에 1억3000만 원씩 불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여야에 최소한의 분별력이 있다면 국민을 위해 서둘러 처리할 입법과제는 재정준칙 법제화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재정 낭비를 초래할 개정안에만 힘을 쏟는다. 여야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 좋자고 이러는 것인가. 포퓰리즘 폭주를 당장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