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두가 길었다. 축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노사관계가 축구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서로 격렬하게 뛰지만 반칙은 상대방 선수를 다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심판은 엄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 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노와 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공정한 역할이 산업평화와 노동자 권리 증진 모두를 가져 올 수 있다. 축구에서 승패가 갈리는 것이 ‘골’을 넣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골문 앞까지 공을 가지고 가는 협력과 체력이 중요하다. 노사관계도 축구와 마찬가지로 행위자들의 협력과 신뢰가 기업의 효율성과 노동의 형평성을 모두 보장한다.
노사관계 공정한 심판 역할 해야 할 정부
그럼 정부는 노사관계에서 공정한 심판을 보고 있을까.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최근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비정규직과 노동조합에 대한 의식조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61.8%는 비정규직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고 응답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노동시장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비정규직이 동일한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는지 확인한 결과 응답자의 73.8%가 동의하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서도 83.2%가 동의하고 있었다.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53.7%가 부정적으로 응답하였다. 국민 다수는 비정규직이 차별을 받고 있고 대책이 필요하지만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사관계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상당히 달랐다. 우선 ‘노동자가 기업으로부터 받는 대우가 정당한지’에 대해 응답자의 61.8%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는지’를 질문한 결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38.7%로 ‘보장받고 있다’는 응답(16.3%)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79.8%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정부의 노사관계 방향과 관련해서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노사관계를 규율해야 한다’는 응답이 54.2%로 가장 높았고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응답은 34.3%였으며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11.5%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결과들은 현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이 국민의 정서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 위한 ‘노동조합의 혁신’도 요구
국민들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혁신을 촉구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46.1%가 찬성(반대 응답은 21.8%)하여 긍정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노동조합의 활동은 일부 조합원이나 노조간부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고 절반 이상이 응답(51.4%)하였다. 이에 비해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하였다. 또한 현재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중심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나, 미래의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들이 노동조합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와 노동조합은 국민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민 절대 다수가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노동조합과 불필요한 대결과 갈등을 중단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기업에 편향된 노사관계 정책을 바로잡아,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조합도 취약노동자 등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활동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사회적 연대를 위해 정규직 조합원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스포츠에 규정이 없으면 경기가 진행될 수 없듯이, 노사관계에 약육강식만 있으면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현 정부의 타협 없는 노사관계에 대해 국민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노동조합에도 내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든 노동조합이든 국민적 요구를 먼저 수용하는 조직이 결국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