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아이젠하워의 탄식

입력 2023-04-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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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상대 악마화만 노리는 정치 현실

준엄히 꾸짖으며 불출마 택한 의원

‘검수완박법’ 논란 자초한 헌재도

진영 논리서 자유로운지 돌아봐야

헌법재판소가 얼마 전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유효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 결정이 역사 책갈피에서 소환한 인물이 있다. 미국의 14대 연방대법원장(1953~1969년) 얼 워런이다. 1966년 미란다 판결을 비롯해 미 형사사법을 바꾼 다수 판례를 끌어낸 인물이다.

법원 판결은 때로 피의자만 보호한다는 논란을 부른다. 그 완결판에 해당하는 것이 미란다 판결이다. 청소년기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린 미란다는 1963년 1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검거돼 자백을 하고 진술서도 썼다. 하지만 국선변호사 앨빈 무어가 등장해 판을 뒤집는다. 미란다가 변호인 선임권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다는 점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범행 실체가 아니라 수사 절차에 초점을 맞춘 변호였다.

워런의 법정은 무죄 방면을 택했다. 수사의 절차적 흠결을 중시해 자백의 증거력을 배척한 결과였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고 ‘미란다 고지’가 일반화됐다. 미란다 같은 흉악범을 다시는 방면하지 않기 위해서. 그 판결이 부른 논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근대법의 핵심인 적법절차 원리를 형사사법에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작지 않다.

적법절차 원리는 우리 헌법적 원리로도 존중된다. 모든 국가작용은 정당한 법률·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입법절차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검수완박법 결론은 그래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두고두고 그럴 것이다. 헌재는 ‘실질적 토론을 보장하는 다수결 원칙’이 훼손됐다고 봤다. 재판관들은 꼼수가 난무한 저간의 사정을 제 손금처럼 훤히 들여다봤을 것이다. 헌재는 그런데도 권한쟁의 심판의 주요 쟁점에 5 대 4로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날 선 반응이 쏟아진다. ‘커닝은 했지만 성적은 유효하다’는 황당한 논리란 것이다.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은 정색을 하고 성명을 냈다. “과정과 절차가 헌법에 위배돼도 결과는 정당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결정이나 궤변”이란 성명이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다수의 힘을 가진 정치 세력이 똑같은 위법한 절차를 통해 법을 만들어도 중단시킬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워런은 뭐라 평할까. 적어도 칭찬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나. 진영논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관점이 유력하다. 이번 결정을 주도한 5명, 또 반대한 4명은 나란히 특정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 어떤 안경을 쓰고 봐도 진영 해석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실체적 진실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이런 관측이 대두되는 것만으로도 씁쓸하다. 헌법적 가치가 최우선시돼야 할 헌재의 풍경이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진공 속에서 피고 지는 꽃은 없다. 적어도 물은 필요하고 흙도 있어야 한다. 햇빛도 없어서는 안 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해당 국가의 제도적 기반이 얼마나 건강하냐에 따라 어떤 경제는 흥하고 또 어떤 경제는 망한다. 대한민국 제도의 근간인 정치와 사법에서 매우 불길한 신호가 나오고 있다. 다들 진영논리에 갇히다 못해 이제 헌법적 가치마저 뒷전이다. 정상이 아니다. 국가 경제가 홀로 순항할 수 있을까. 진공 속에서 과연 꽃이 피어날까. 낙관할 계제가 아니다.

어찌해야 하나. 두루 배우고 반성할 일이다. 우선 최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의 35세 젊은 의원 오영환에게서 배우자. 오 의원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정치 현실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라고 했다. 자기반성에 가깝지만, 실은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진영 논리의 병폐를 꾸짖은 일갈이다. 우리 정치판만 젊은이의 분노와 좌절을 부르는 것일까. 헌재를 비롯한 사법부는 어떤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할 필요가 있다. 반성 없이는 개선의 여지도 없으니까.

워런에게서도 배워야 한다. 워런은 미 공화당 출신이다. 그러나 자기 진영에서 반길 리 없는 판결을 쏟아냈다. 그렇게 범사회적 각성과 변화를 이끌었다. 그를 임명했고 그 판결 방향에 적잖게 낙담했던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워런이 진영 논리에 갇혀 뻔한 판결만 줄줄이 내놓았다면 어찌 됐을까. 미국 사법체제에 큰 영향을 미친 판례도, 아이젠하워의 탄식도 없었을 것이다.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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