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중심으로 열풍이 일었던 성격유형검사(MBTI). 이를 다시 조명하는 것도 이젠 새삼스러울 정도인데요. MBTI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우리 사회 트렌드로 자리잡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적용했던 MBTI를 ‘기업’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최근 사람을 대상으로 한 기존 MBTI 분류를 모방한 ‘기업 MBTI’ 분류 방식이 증시에 등장하면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상상인증권은 지난달 말부터 MBTI 형식으로 기업 성향을 분석한 종목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개별 기업들이 지향하는 목표나 경영 방향, 주목도, 실적 등을 MBTI에 따라 분류하면서 기업을 비교적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죠. 어렵게만 느껴졌던 기업의 분석 요소를 MBTI와 결합해 접근성을 높였다는 건데요. 이미 사회에 널리 퍼진 MBTI와 자본시장의 결합을 들여다봤습니다.
MBTI는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모녀가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에 기반해 만들었습니다. 당시 MBTI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과 적합한 일자리를 찾는 데 사용됐습니다.
MBTI는 4가지 지표에 따라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사교적이고 활발한 외향(E) 유형 vs 얌전하고 정적인 내향(I) 유형 △사실적인 것을 보는 감각(S) 유형 vs 관념적이고 의미적인 것을 보는 직관(N) 유형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사고(T) 유형 vs 공감적인 성향의 감정(F) 유형 △체계적이고 질서정연한 성향의 판단(J) 유형 vs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성향의 인식(P) 유형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된 지표를 4가지 알파벳으로 나열하면 최종적으로 16개의 성격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렇게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는 MBTI를 기업 분석에 적용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상상인증권이 지난달 29일부터 매주 1회에서 2회 MBTI 형식으로 기업을 분석한 리포트를 내고 있는 건데요.
상상인증권 관계자는 “MBTI 리포트는 기존 리서치 리포트의 틀에서 벗어나, 기업의 특징에 따라 16가지 MBTI로 분류했다”면서 “조금 더 직관적이고 흥미롭게 주식을 바라볼 수 있게 하자는 의도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친숙한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개별 종목 기업의 관심도와 성장성을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분류했는지 살펴볼까요. 일단 △성장 동력 △성장 방향성 △시장 관심도 △실적 가시성 등에 따라 기업을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성장 동력이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에 따라 각각 I형, E형으로 구분하는데요. 영업이익률처럼 기업 내부 지표의 개선을 통해 성장하는 기업은 I형으로, 인수합병(M&A)과 해외 진출 등 외연 확장을 통해 성장하는 기업은 E형으로 분류합니다.
성장 방향성은 S형과 N형의 지표입니다. 기존 사업부문에 집중하고 이를 강화하려는 방향성을 가진 기업이 S형이라면, 사업다각화 등 신사업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은 N형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죠.
T형과 F형을 구분하는 요소는 시장 관심도인데요. 산업 내에서 관심과 기대를 적게 받는 기업을 T형으로, 시장 혹은 산업 내에서 관심과 기대를 많이 받는 기업은 F형으로 분류합니다. 실적 가시성은 J형과 P형에 해당하는데요. 활발한 기업설명회(IR), 꾸준한 추세 등으로 실적 가시성이 높은 기업을 J형으로 분석합니다. 반면 가이던스 부재, 연구개발(R&D), 수주 등 실적 가시성이 비교적 낮은 기업은 P형으로 분류하죠.
실제 기업은 어떤 MBTI로 나타났는지 살펴볼까요? 최근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는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F&B는 ‘INTJ’로 분류됐습니다. 수익률 제고에 경영중점을 두면서 신사업 진출을 도모하고, 최근 닭 가격 인상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며 시장 관심이 떨어졌지만, 향후 실적 개선을 예측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분석입니다.
이 외에도 패션 기업 F&F와 펫푸드 전문제조업체 오에스피는 ‘ESFJ’로 구분됐고, 키즈 콘텐츠 기업 SAMG엔터는 ‘ENFJ’, 복지전문기업 현대이지웰은 ‘ESTJ’로 분류됐습니다.
기업에까지 MBTI를 묻는 이 상황에서, 과연 MBTI가 언제부터 우리 생활에 깊게 자리 잡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MBTI가 국내에 도입된 시점은 1990년 전후로 추정됩니다. 오늘날 유행하게 된 건 2020년 안팎으로, 10여 분만에 할 수 있는 ‘무료 성격유형검사’ 웹 사이트가 알려지면서 급물살을 탔죠. 이전에도 혈액형, 별자리 등으로 성격 유형을 구분하곤 했지만, MBTI는 ‘설문으로 분석한 결과’라는 점으로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이제 회사에서의 점심, 회식 자리에서도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이 자주 오가는데요. 취업 시장에도 MBTI가 등장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한 카페는 직원 채용 공고에 “E 성향이신 분들 많은 지원 부탁드린다”면서 “ENTJ, ESFJ분들은 지원 불가”라고 못박아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공고엔 “I 성향이신 분들도 많은 지원 부탁드린다. INFP, INTP, INTJ분들은 지원 불가”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 채용 과정에서 MBTI 결과지나 MBTI 유형을 바탕으로 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회사도 여럿 발견됩니다. 여기에 특정 유형의 지원을 독려하거나 우대사항으로 내건 회사도 있었죠.
MBTI를 채용에 참고하는 기업들은 지원자의 성향과 업무 역량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지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MBTI 유형에 따른 편견 탓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I형 등 특정 유형의 사람을 배제할 수 있다는 지적인데요. 전문가들도 MBTI의 신뢰도에 대해서 우려를 표합니다. 선천적·후천적 요인 등 다양한 변수가 있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검사인 만큼 왜곡 가능성이 크기에 정확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는 건데요.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실재하는 내 모습’은 다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16가지 유형으로 성격을 못박으면서 타인과 자신을 다면적으로 볼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또 인터넷에서 할 수 있는 무료 검사는 기존 MBTI 검사 내용을 활용, 저작권을 우회해 만든 ‘간이 검사’이기도 합니다.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MBTI가 채용과정에서 평가도구로 활용되면, 구직자들은 기업에 맞춰진 반응을 연기하는 등 진정성 없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며 “주요 기업뿐만 아니라 소규모 기업과 아르바이트 채용 시에도 원천적으로 MBT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인의 MBTI사랑은 외신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CNN은 지난해 7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MBTI 열풍이 불고 있다면서 “한국의 MZ세대는 데이트 상대를 찾는 데 MBTI를 적극 활용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알아가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MBTI를 통해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을 골라서 만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치솟는 집값·취업 경쟁 등의 상황에 내몰린 한국 MZ세대 사이에서 MBTI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는데요. 하지만 마이어스-브릭스 컴퍼니의 아시아태평양 총괄인 캐머런 놋은 “자신과 잘 맞는 연애 상대방을 찾기 위해 MBTI 테스트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MBTI 유형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재적인 파트너를 배제하는 것은 멋진 사람과의 흥미로운 관계를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처럼 MBTI는 어느새 일상 속 한 부분으로 거듭났습니다. 사람의 성향을 간단하게 알아보거나 대화 꼭지를 트는 ‘아이스브레이킹’ 용으론 좋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 ‘과몰입’은 금물인데요. 증권가에도 MBTI가 등장한 만큼, 다음엔 과연 어떤 분야에 접목돼 이목을 끌게 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