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 조항은 포함 안 돼
국내 반도체 기업 직접적 영향은 적어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60조 원이 넘는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만들었다. 이에 현재도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더 심해지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현지 진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18일 저녁 7시(현지시간) EU반도체법 관련 유럽의회, 유럽 이사회 등과 정치적 합의를 이뤘다.
EU 집행위가 2022년 7월 최초로 제안한 EU반도체법은 2030년까지 430억 유로(62조1800억 원)를 투입해 기존에 보유한 연구개발과 제조장비 기술 강점을 바탕으로 생산 역량을 늘려 EU의 전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 점유율을 기존 9%에서 2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미국과 중국 등 각국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처다.
이미 미국은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 보조금(390억 달러)과 연구개발 지원금(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69조5000억 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지원법을 시행하고 있다.
EU반도체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반도체 기술 역량 강화 및 혁신 촉진을 위해 33억 유로를 투입해 유럽 반도체 실행계획(Chips for Europe Initiative)을 추진한다. 실행계획에는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 전문인력 양성 및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가 포함된다.
아울러, EU 역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통합 생산설비와 개방형 파운드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 근거를 마련한다. 다만, 해당 시설은 EU 내에서 최초로 도입되는 설비이어야 하며,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약속해야 한다.
또 EU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모니터링 및 위기 대응 체계가 도입된다. 공급망 위기 단계 발령 시에는 반도체 사업자들에게 생산 역량 등 필요한 정보를 요구해 수집하게 되며, 통합 생산설비와 개방형 파운드리에게는 위기 관련 제품에 대한 생산의 우선순위를 지정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EU반도체법 타결에 대해 "유럽은 경쟁력 있는 분야가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로, 우리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는 아니다"라며 "다만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려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경쟁자로 부상한 데다, 향후 경쟁 구도가 변하고 더 치열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내비쳤다.
산업부 관계자는 "EU반도체법을 통해 EU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이 심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면서도 "EU 내 반도체 생산 설비 확충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수출 기회 확대로 이어져 기회 요인도 병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EU 반도체 법안에는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 차별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며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이 EU에 있지 않아 직접적 영향은 적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EU반도체법의 남은 입법 절차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법안의 최종 확정까지 업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라며 "우리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기회 요인은 극대화할 수 있도록 EU 당국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