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이 어제 내놓은 ‘코로나19 금융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원금·이자 납기가 연장된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잔액이 4일 기준 36조6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잔액 규모가 부담스러운 것은 절대 액수가 큰 탓만은 아니다. 코로나19 피해를 줄이는 차원에서 금융당국이 유도한 자율 협약에 따라 시작된 금융 지원이 곧 마감될 예정이란 현실도 크게 작용한다.
국내 은행권은 2020년 초부터 대출 원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을 유예했다. 비상조치였다. 처음 설정된 시한은 그해 9월이었으나 5차례 연장됐다. 현재로선 9월이 최종시한이다. 부채 더미에 앉은 소상공인 등이 올가을 이후 그간 만기 연장된 대출 34조여 원을 비롯해 총 36조여 원의 원금·이자를 갚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시한폭탄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셈이다.
그러잖아도 가계와 기업 대출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 국가적 걱정거리가 된 지 오래다. 가계와 기업 대출을 합한 민간신용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긴 223.7%까지 확대됐다. 부채위험 평가지표로 이용되는 신용갭도 작년 2분기 기준 16.2%포인트에 달해 국제결제은행(BIS)이 비교하는 세계 43개국 중 일본(21.1%p)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이 지표는 10%포인트를 넘으면 경보 단계로 분류된다. 대표적 금융안정지수인 금융불안지수는 올 2월 기준 21.8을 기록해 위기단계(22)에 바싹 근접했다. 상장기업 10곳 중 3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한계기업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생명보험사 23곳과 손해보험사 15곳의 자료를 입수·분석해 어제 발표한 자료도 주목된다. 2019년 1145만3000건이던 보험 해약건수가 지난해 1165만3000건으로 20만 건가량 증가했고, 보험금을 담보로 하는 대출인 약관대출도 같은 기간 6조 원가량 늘었다. 보험에 손을 대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은 서민경제가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 때 흔히 나타나는 적신호다.
금융당국은 4일 금리인하, 이자감면 등을 골자로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취약계층을 돕는 정책 대응은 정부의 기본 책무다. 불안과 동요가 커지지 않게 적절히 임해야 한다. 과유불급의 지혜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장 질서에 반하는 땜질처방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은 무모하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환경을 상수로 가정하고 옥석을 구분하는 지원 정책과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정교한 출구전략으로 부채 방정식을 풀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