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어제 “불공정거래는 사회적 신뢰와 정직성이란 핵심 가치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라면서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해 불공정거래를 척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온 자리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이 함께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였다. 기관장들은 회동에서 무관용 원칙을 앞세워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로 입을 모았다고 한다.
국내 주식시장 기류는 극도로 흉흉하다. 사회 지도층, 고소득 전문직,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소시에테제네랄(SG)발 주가 폭락사태의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유사한 한탕주의 사건이 터져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경찰은 문화 콘텐츠 투자에서 실적을 내면서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은 모 투자자문 대주주 A 씨를 쫓고 있다고 한다. 이 대주주는 상당한 자산가들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많게는 100억 원대의 돈을 받은 뒤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규모가 수천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김 위원장 언급대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런 유형의 사건들은 금융범죄 특성을 고스란히 공유한다. 금융상식에 반하는 고수익을 장담하며 투자를 유혹하고, 새 투자자를 데려오면 적잖은 수수료를 주는 다단계 영업 방식도 쓴다. 때론 차액결제거래(CFD) 같은 위험도 큰 신종 기법에 과도하게 기대기도 한다. 당국의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사전 감지나 대응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실은 딴판이다. 감시 시스템이 적기에 작동해 피해 규모를 확실히 줄인 사례가 있는지 의문이다. 규제 당국의 먹통 시스템이 피해자를 양산하고 시장 불신을 키우는 셈이다. 또 정작 사건사고가 불거져도 당국은 늑장 대응하기 일쑤다. 설상가상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란 일종의 ‘풍토병’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의 검찰 처리율은 평균 70%대 중반 수준에 그친다. 90%대 중반에 육박하는 전체 사건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법원에서 유죄 인정이 되더라도 형량이 깃털보다 가벼운 경우도 흔하다. 금융당국, 검찰, 법원이 불공정거래를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원장은 어제 회동에서 “검찰과 금융당국이 시장 교란 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거라고 봐도 될 것”이라며 “거취를 걸다시피 한 그런 책임감을 갖고 추진해 갈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의 군말은 필요 없다. 자본시장 신뢰는 결코 말잔치로 지켜지지 않는다. 미국, 유럽 등의 시장경제 역사가 이를 말해 준다. 김 위원장과 이 원장부터 결연히 직을 걸고 제도를 보완하며 불공정거래와 전쟁을 벌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