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단위 생산 비용 미국의 절반…석탄 이하 가격으로 떨어질 수도"
"기술 개발로 안전성 확보와 사용 후 핵연료 처리도 해결할 수 있어"
"해수 우라늄, 현재는 가격 비싸지만 향후 에너지 안보 확보 가능해질 것"
"탄소 중립은 경제적으로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 함께 할 수 있는 행동이어야 가능하다. 한국은 원자로의 가격을 낮춰 개도국도 사용할 수 있는 원자로를 개발할 수 있고 여기에서 기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봤다"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인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 중립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선진국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개도국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현재로서는 원자력 발전이 그 열쇠라는 점을 강조했다.
뮬러 교수는 "지구 온난화를 치르는 이 전쟁 자체가 (현재까지는) 실패했다고 본다"라며 "이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현시점에서부터는 반드시 정부와 산업계의 협업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 관련 베스트셀러 서적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강의(Energy for the Future President)' 저자인 그는 중성미자 연구 및 핵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 시절 대통령 과학 자문단으로 활동했다.
특히 2010년부터 ‘버클리 지구(Berkeley Earth)’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 지구온난화 문제를 연구하며, 미 정부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에너지와 환경정책에 대한 조언을 쏟아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25~27일 부산에서 열리는 '기후산업국제박람회' 개막식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투데이는 행사에 앞서 24일 뮬러 교수를 만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저탄소 에너지 전환과 원전의 지속가능성·발전 방향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원전의 위상이 변했다. 특히 한국 국민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인 정치적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한 '탈(脫)원전' 정책은 윤석열 정부 들어 '탈(脫) 탈원전' 정책으로 완전한 반전을 이뤘다.
이런 위상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국제사회에서도 원자력을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프랑스는 추가 원전 건설을 계획 중이며,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등도 원전 활성화에 찬성하고 있다. 미국 역시 올해 3월 캘리포니아주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운영 면허가 만료된 이후에도 재허가 심사가 끝날 때까지 이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방안을 이례적으로 승인했다.
탄소배출이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친환경'과 '원전'이 결합한 '친환경 원전'이란 단어도 이유로 생겼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유럽연합은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 에너지로 분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국 역시 같은 해 9월 원전을 '친환경 경제활동'에 포함하는 내용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발표했다.
뮬러 교수는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원전 정책이 (진흥으로) 전환된 점이 세계적으로 아주 좋은 선례가 되고 있다"라며 "한국은 원자로 가격을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원자력이 가격이 높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국가로 한국 원전의 단위 생산 비용은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가격은 더 낮아져 그 어떤 에너지원보다 저렴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고 석탄 가격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탄소 중립을 위한 원전의 친환경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직 '원전은 위험하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원전 확대에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뮬러 교수는 이런 문제는 기술개발로 충분히 해결됐고 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을 포함한 원전의 주요 사고는 연료가 녹아서 생긴 사고이지만 지금 사용하는 원자로는 이에 대한 보완책들을 내포한 차세대 원자로"라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솔루션은 '녹지 않는 연료'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녹지 않는 핵연료란 정식 표현으로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말하며 기존 핵연료에 비해 원전을 정상적으로 운전하는 조건에서도 핵연료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노심을 냉각하는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핵연료의 건전성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핵연료를 의미한다.
이는 불가피하게 원전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치명적인 원전 손상 및 누출을 차단 또는 지연할 수 있게 돼 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뮬러 교수는 또 "일반 원자로를 사용하더라도 펌프를 사용해서 냉각수를 사용하지 않고 중력을 사용해 냉각수를 공급하는 방법을 채택한다면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와 관련해선 뮬러 교수가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 '딥 아이솔레이션(Deep Isolation)'의 기술을 소개했다.
딥 아이솔레이션은 지하 수 킬로미터까지 깊숙하게 시추공을 뚫어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심부 시추공 기술을 개발 중으로 원전으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뮬러 교수는 "1마일(1.6㎞) 깊이로 시추해서 시추공을 만들고 그 안에 폐기물을 넣기 때문에 상당히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며 "관련 논문도 많이 나왔고, 공개적으로 기술을 알리고 있으며 특허 출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뮬러 교수는 20~30년 후엔 결국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이 결합한 형태로 에너지가 사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경우 특히 원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재생에너지를 주력으로 해도 에너지 변동성이 발생했을 때 원전이 강한 프랑스에서 전기를 조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섬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전력을 끌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뮬러 교수는 "한국은 에너지 변동성을 대비하기 위해 원전을 기본으로 하고 전기가 하루 24시간 365일 사용되지 않는 곳은 풍력과 태양광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이 삼면이 바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뮬러 교수는 "한국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에는 해수가 가득하며, 해수에는 우라늄이 있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면 해수에서 우라늄 추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신중한 설명이 필요한 데 전체 원자력 가격 중 우라늄의 비중을 생각하면 2% 수준이다. 그러나 기업이 해수 우라늄 추출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투자를 했다면 그 투자비 때문에 우라늄 가격이 현재보다 5배 올라가는 상황이 된다"면서도 "다만 우라늄 가격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이기 때문에 5배가 올라도 전체 퍼센트로 보면 10%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격 상승은 미미하게 있지만 에너지 안보도 확보할 수 있고 원전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150개 국가가 (바다라는) 자신의 천연자원을 이용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격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재정적으로도) 정부와 업계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뮬러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미 원전 동맹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했다.
그는 "한미 원전 동맹은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우선 차세대 원자로로 이것이 원전의 미래다. 4세대 원자로 같은 경우에는 모듈 형태고 필요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며 내재적으로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 폐기물 문제는 많은 사람이 원자력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양국 정부는 이들 문제에 대해 더 유연하고 단기적인 목표를 세워 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