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현대차 상생경영의 핵심은 ‘中企 육성’

입력 2023-05-30 06:00수정 2023-05-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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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진 중소중견부장

하청업체와 경영전략·비전 공유
상생 발판으로 품질경쟁력 확보
지속성장 위해 中企육성 시급해

▲설경진 중소중견부 차장. 신태현 기자 holjjak@
대형 기획사 가수의 일부 노래 프로듀싱에 참여하던 하청업자가 2년 전 중소기획사를 설립했다. 이 중소기획사는 신인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를 내세웠지만, 대형기획사와 방송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제대로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이에 피프티 피프티는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했다. 이 중소기획사는 해외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중소기업들에 또 다시 하청(위탁)을 줬다. 틱톡과 어울리게 편곡과 안무 등을 짜내고 해외 시장 마케팅에 집중한 결과,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걸그룹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독식·독점이 아닌 상생하는 하청, 위탁으로 성공한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대기업과 중기의 상생 생태계 조성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했다. 1인당 GDP를 대만에 추월당한 것과 함께 찾아온 무역적자에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반도체가 대만에 밀린 것으로 보고, 반도체 육성을 위해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대만이 TSMC를 필두로 파운드리와 팹리스 기업들 간에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키우겠다고 한다. 그러나 핵심이 빠져 있다. 바로 하청 전자기기 위탁생산서비스(EMS)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없다.

대만은 TSMC를 필두로 한 반도체 기업과 파운드리, 팹리스 기업들 외에 EMS 산업이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대만에는 폭스콘, 아수스(ASUS) 등 EMS 업체들이 즐비하다. 하청 중소기업이던 이들은 이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국내에는 전자기기 위탁생산 업체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하청 중소기업의 국내 파급 효과는 영원무역을 봐도 알 수 있다. 의류업계 TSMC라고 불리는 영원무역은 전 세계에 잘 나가는 브랜드 옷은 영원무역이 다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해외 생산 물량이 대부분이고, 국내 매출 보다 수출이 전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원재료는 국내에서 15%대 비중으로 매입하고 있다.

하청업체와의 상생으로 잘나가는 대표적인 기업이 현대차그룹이다. 대부분 대기업 하청업체는 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신제품을 공급해도 제대로 공개하지도 못한다. 공개했다가는 원청 대기업에서 바로 불벼락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하청 업체들은 기술 개발을 해 상용화한 제품을 현대차나 기아에 공급한다고 홍보한다. 현대차그룹에서 어떤 제약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하청업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단가 인하 압력을 넣지 않는다고 한다. 하청업체에 합리적인 이익을 보장해 주고, 하청업체는 이 수익을 갖고 기술 개발이나 공장증설 등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니 현대차나 기아 이외에도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공급을 요청하는 발길이 늘었다.

현대차그룹의 1차 하청업체 대표들을 만나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포함해 그룹의 임원들과 소통을 자주 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2위 대기업 회장과 임원들을 하청 중소기업 대표가 만난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되물은 적이 많다. 정 회장은 물론 임원들은 이들과 경영 전략과 비전도 공유한다고 한다.

이런 하청업체와의 상생 구조가 자리 잡은 결과, 현대차그룹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부품 조달을 못해 생산하지 못하고 있던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 달리 큰 문제 없이 생산해 판매할 수 있었다. 이들 하청업체는 글로벌 자동차에서도 사용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부품을 생산하기에 현대기아차는 품질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 전기차법에 따라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추는 데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다소 여유가 있다. 하청 업체들 상당수가 이미 미국 현지 생산체제 계획에 대해 현대차와 기아와 함께 공유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쟁사에 비해 하청업체와 소통하고 상생한 결과다. 발빠르게 미국 진출을 준비하다 보니 미처 준비하지 못한 글로벌 자동차들이 현대차그룹 하청기업에 부품 공급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다시 늘어나면 무역적자를 단기적으로는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역수지를 떠나 중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이젠 일부 대기업 집중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청이 잘되면 본청’도 같이 잘된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현대차그룹의 사례가 우리나라 전체 기업으로 퍼져 나갈 때 진정한 ‘G7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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