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법은 첨단 반도체의 대만 집중도를 완화하고, 미국의 뒤처진 첨단 반도체 제조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 반도체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팬데믹 봉쇄와 텍사스 겨울 폭풍 등 심각한 반도체 공급 차질을 겪으면서 반도체가 국가 안보 문제로 대두됐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한다. 특히 TSMC를 보유한 대만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64%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미국으로서는 인위적으로 대만 제조 집중도를 낮추고 싶어 할 것이다. 최첨단 칩 생산이 대만에 집중돼 있는 점이 미국 국가 안보에 중요한 위협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8월 미국 입법부가 승인한 반도체 및 과학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미국 내 반도체 제조 확장 보조금 390억 달러와 반도체 연구개발(R&D) 및 인프라 프로젝트 지원금 130억 달러 등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자금은 첨단 노드 공정에 할당돼 있고, 20억 달러는 국방 분야 성숙 노드 공정, 20억 달러는 차세대 국방 기술 R&D 프로젝트에 배정됐다.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미국 반도체법은 반도체 가치 사슬 중에서 미국의 취약 분야를 지원하고자 한다. 미국은 설계자동화(EDA) 도구, 반도체 설계, 웨이퍼 제조 장비 분야 등에서는 강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특수 소재, 파운드리, 후공정(OSAT) 분야가 취약하다.
미국 반도체법에 맞서 주요국들도 역내 반도체 산업 지원 경쟁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유럽연합은 최대 300억 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중국은 10년간 1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주로 시설 투자에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잠재적으로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민간 기업들은 앞다투어 향후 20년간 미국 반도체 제조 생태계에 2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대 수혜자는 TSMC를 꼽을 수 있다. 애리조나에 제2공장을 준공하고, 투자금액을 4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4나노(㎚) 칩을, 2026년부터 3㎚ 칩을 제조할 계획이다. 인텔이 2번째 수혜자일 수 있다. 애리조나 및 오하이오에 각각 2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4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주요 노드는 7㎚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삼성전자가 수혜를 볼 것이다. 텍사스 공장에 1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추가로 1500억 달러 규모 투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잠재적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중국이다. TSMC, 삼성전자 등 미국 반도체법에 근거해 보조금을 수령하는 기업들은 중국 내 추가 확장을 중단하도록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은 어쩔 수 없이 반도체 독립을 위해 YMTC, SMIC 등 자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다. ASML,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리서치, KLA 등 장비 업체들이 중국 수출 제약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도쿄일렉트론, 니콘 등 일본 장비 업체들은 미국 장비 업체들에게 미국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미국 사업장이 없는 업체, 반도체 설계, 소재, 설계자동화(EDA) 업체 등도 상대적 피해자가 될 것이다.
반도체법이 도전받게 될 과제로는 미국 관료주의와 규제, 노동 인력 부족, 자금 소진 시 원가 경쟁력 약화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대만에 비해 미국 내 공장 운영 비용은 15~25%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보조금은 2026년에 종료될 예정이다.
반도체법이 가져올 변화로서 제조 분야가 아닌 설계 분야가 부가가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해 제조 경쟁력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 또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약화될 것이다. 중국은 타의에 의해 반도체 자급자족의 길로 가고, 미국은 첨단 제조 설비와 첨단 노드 기술을 내재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