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6명의 민간자문위원들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퇴직 후 소득보장에 대한 국가와 개인의 적절한 역할 및 책임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에 관한 국민의 사회적 대화를 원활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민간자문위원회의 활동과 보고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민간자문위원회 보고서는 노동시장 참여기간 중 각종 소득과 자산의 일부를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저축해야 하는 대다수 국민에게 성공적 노화를 위한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의 공동 납부자인 기업 또한 이 보고서를 참고해 향후 국내외 시장경쟁력 확보를 위해 조정이 필요한 영역과 수위를 점검할 수 있다. 은퇴 후 소득을 위한 각종 자산 상품의 기획 및 마케팅과 운용을 담당하는 금융시장 및 부동산시장 담당자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현재 및 미래 소비자의 노후준비 행태를 예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 모두가 보고서를 통해 고령인구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과 행동의 사회적 습관을 전반적으로 재정립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
2003년 3명의 위원과 6명의 전문가로 시작해 2006년까지 활동한 영국의 연금위원회 활동과 보고서는 한국의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민간자문위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킨지 회사와 영국산업연맹을 거쳐 메릴린치 부회장이던 아데어 터너가 위원장을 맡고, 통신노동자노동조합 사무총장이던 지니 드레이크와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 교수이자 사회배제분석연구소 소장이던 존 힐즈가 위원으로 활동한 이 위원회는 당시 영국의 높은 노인빈곤율과 낮은 출생률, 그리고 증가되는 기대수명에 대응할수 있도록 연금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일명 터너위원회로도 일컬어지는 연금위원회의 활동은 현재 한국에 비해 훨씬 복잡한 공적 노인소득보장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당시 영국사회를 감안하면 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위원회의 보고서는 2006년 5월 정부의 ‘퇴직후 소득보장’ 백서를 비롯해 2007년부터 2014년까지의 연금법 개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터너위원회 활동의 성공요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석된다. 첫째, 연금위원회 위원들 간의 상호신뢰와 전문성에 대한 평등한 존중이다. 이들은 당시 영국 연금개혁에 대해 입장과 의지를 달리하던 총리, 재무장관, 노동연금부 장관으로부터 각각 지명받았으나,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일절 영향받지 않고 오직 자료분석과 상호토론을 바탕으로 위원회 활동을 지속했다. 둘째, 연금위원회는 자신들의 활동기간과 범위에 대해 정부나 정당, 그리고 선거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보장받았다는 점이다.
셋째, 2004년 10월과 2005년 11월 각각 발행한 보고서에서 위원회는 연금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논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을 줄이고 이를 위한 조세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연금수급기간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데이터와 이론을 통해 명확히 밝혔다는 점이다.
특히 행태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많은 영국 국민들은 이자율 등의 수치가 아닌, 관성 또는 충동 등을 통해 저축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로써 국가의 강제저축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보고서 발간 이후 각 지역별로 열린 국민토론회에서 연금개혁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받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넷째, 위원회는 자신들의 활동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언론에 홍보하는 동시에 경영자단체, 노동조합, 금융기업단체, 시민단체 등 광범위한 이해당사자와 야당 정치인과 충분히 소통하고 자문을 얻었다. 또한 현재 연금제도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어느 한 집단 또는 정당에 돌리지 않고 누적된 결과임을 강조함으로써 연금개혁 논의과정에서 사회적 통합과 의견의 합의를 중시하였다.
무엇보다도 터너위원회의 성공은 사용자단체, 노동자단체, 정부 모두로부터 양보를 이꿀어내고 영국사회의 현재와 미래 노인 모두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연금개혁 논의의 핵심은 고령사회에서 누구나 퇴직 후 빈곤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도록 수행해야 할 역할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자문위원회와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를 염두에 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