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세력, 계좌를 탐하다]②

입력 2023-06-07 07:00수정 2023-06-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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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세력, 본지 기자에 사례금 제시하며 접근하기도
과거 ‘가짜 보도자료’로 주가 조작한 사례도 있어
설문 응답자 “기자-조작세력 관계 헤집어야” 의견도

“보내주는 ‘재료’를 기사로 내주면 사례금 월 1000만 원을 주겠다.”

2021년 11월, 서울 여의도 교보증권빌딩의 한 카페. 처음 기업설명(IR) 대행사를 사칭해 접근한 이들은 본지 기자에게 특정 종목의 기사와 특징주 기사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사례금으로 월 1000만 원을 불렀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한복판인 여의도에서 언론사 기자를 대상으로 주가조작 세력이 접근한 것이다. 한 차선만 건너면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이 있다.

구체적인 방식은 이렇다. 시장의 테마나 수혜주를 선별한 뒤 ‘재료’를 기자에게 제공, 기자가 이를 기사로 소화해 HTS(홈트레이딩시스템)와 포털사이트 등에 노출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사가 나가기 전에 상당수 주식을 선취매 한다. 호재성 기사 표출로 주가가 오르면 가지고 있던 주식 물량을 털어내고 단기 시세차익을 남긴다. 기사를 보고 뒤늦게 들어온 ‘개미’들만 고점에 물리게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과거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건수는 총 5143건에 달한다. 이 중 3대 주요 불공정거래(시세조종행위, 미공개정보이용행위, 부정거래행위)로 분류되는 사건만 해도 2581건(50.2%)이었다.

언론에 검은손 뻗은 세력

주가조작 세력의 수법 중 하나는 언론을 이용한 것이다. 호재성 이슈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선 언론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자본시장 관계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주가조작 예방법으로 ‘기자들이 쓴 기사가 허위인지 빨리 파악해야 한다’, ‘기자와 세력과의 관계를 헤집어야 한다’ 등을 제시했다.

‘주가조작을 제안한 사람’으로 기자를 꼽은 경우도 있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11년 언론사 기자와 공모,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부정거래를 하고 해외 거주 전직 증권사 직원을 이용해 시세조종을 한 사건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금감원은 “언론사 및 언론인 특성상 미공개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기사를 이용해 독자들을 쉽게 주식매매를 유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증권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가짜 보도자료’를 보내 주가 조작을 시도한 예도 있다. 램테크놀러지 주가는 2021년 11월 22일 ‘세계 최초 초순도 기체·액체 불화수소 동시 생산기술 개발’이라는 가짜 보도자료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급등했다. 그러나 다음 날 램테크놀러지의 홍보대행사가 해당 보도자료를 작성해 배포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하자 주가는 17% 급락했다.

CB발행이 트렌드

호재성 이슈로 주가를 부양해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은 지금도 종종 활용되는 고전 수법이다. 2001년 적발된 삼애인더스 사건은 보물선을 이용한 첫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의 대표였던 이 씨는 20조 원 규모의 보물선 발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시장에 유포해 보물선 테마로 주가가 상승한 틈을 타 주식을 매도해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보물선 사건 이후 약 10년 뒤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2010년 외교부는 CNK라는 한국 기업이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전 세계 연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3배에 달하는 4억2000만 캐럿의 대형 광산 개발권을 확보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3000원 수준이었던 CNK 주가는 20여 일 만에 1만6000원으로 5배가량 치솟았다. 연 매출 53억 원, 영업손실 49억 원이었던 이 회사의 가치는 1조 원이 됐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 결과 허위·과장된 내용임이 밝혀졌다.

과거 단기 급등이 주가조작의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전환사채(CB) 발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사모 CB발행 규모가 확대되면서 CB 인수 후 시세 조종,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주가를 상승시킨 뒤 주식으로 전환해 부당이익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CB를 발행사가 회수한 후 최대주주 또는 제3자에게 헐값에 재매각해 부당이익을 교묘하게 빼돌리는 등 CB 활용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3년간(2020~2022년) 사모 CB 발행금액은 총 23조2000억 원(1384건)으로 과거 대비 발행 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2013~2015년 사모 CB 발행 금액은 4조6000억 원(481건)에 불과했다.

불공정거래 전력자인 A 씨 등은 2021~2022년 중 투자조합을 통해 에디슨EV 등 다수 상장사 인수 후 대규모 자금조달(CB, BW) 위계, 허위사실 유포 및 시세조종 등으로 주가를 부양하고 보유 주식 등을 고가로 처분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CB를 발행해 무자본 인수합병(M&A)으로 회사 덩치를 키운 쌍방울 대표는 주가조작 혐의로 2013~2014년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SG증권발 사태는 정공법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는 주가조작 디테일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약 3년에 걸쳐 조금씩 주가를 밀어 올리기 위해선 상당한 인내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계좌소유주의 집 또는 회사로 이동해 주식을 거래하는 행위는 거래소와 금감원의 IP주소, MAC(Media Access Control) 주소 감시망을 뚫어버리는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평가받는다.

2007년 벌어진 루보 사태는 이번 사건과 가장 닮아 있는 주가조작 수법으로 꼽힌다. 자동차용 베어링 생산 업체 루보는 자본금 50억 원 수준의 소형주였다. 2006년 6월 9일 기준으로 900원에 불과했던 루보 주가는 1년도 채 안 걸려 5만1400원까지 오르며 57배 급등했다. 사건의 주범인 김 씨는 시세조종 1세대로 분류되는 인물로 다단계 회사의 간부였던 친동생과 공모해 시세조종을 계획했다. 1차로 모집한 자금으로 루보 주식을 1000원에 매수한 뒤 2차 모집자금으로 2000원에 매수해 1차 매수자에게 100% 수익을 실현해줬다. 다시 3차 모집자금으로 4000원에 매수해 2차 매수자에게도 100% 수익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더 많은 자금을 끌어모았다. 시세조종에 총 1440억 원의 자금과 728개의 차명계좌, 3000여 명의 투자자가 연루된 불공정거래 조사 30년 역사상 최악의 시세조종 사건으로 꼽힌다.

루보 주식은 상한가 없이 하루에 2%, 3%씩 조금씩 꾸준히 상승하며, 시세조정 기간 이상급등 종목 경고를 받지 않았다. 다단계 회사의 영업방식을 시세조정 자금 조달 방식에 최초로 접목시킨 점, 현혹된 투자자들이 계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작전 세력에 넘긴 것 역시 SG증권발 사태와 비슷하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SG증권발 주가 사태는) 많은 비용과 인력, 시간을 할애하는 한편, 굉장히 꼼꼼해야 하는 정교한 수법이었다. 루보사태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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