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 총리, 親러 실리외교 노골화…‘中 일대일로’ 등에 업고 EU와 갈등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동쪽에서 200여km 떨어진 곳에 제2의 도시 데브레첸이 있다. 지난해 8월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제작사 CATL은 이곳에 79억 달러, 약 10조 원 규모의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CATL의 유럽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이고 인구 20여만 명의 이 도시에 9000개가 넘는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언론은 보도했다.
그런데 주민의 반대가 거세다. 환경운동가뿐만이 아니라 정부 지지자들도 올초부터 수시로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왔다. 이들은 환경오염을 우려한다. 특히 지난해 여름 최악의 가뭄으로 고생한 주민들은 공장 가동이 물 부족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한다.반면에 중국은 식수를 재활용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아프리카에 꽤 많은 투자를 해 온 중국이지만 투자지에서 상당수 중국 근로자들을 고용해왔다. 현지 투자를 해봤자 현지에서 일자리 창출이 그리 많지 않았다.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 대학의 진출도 헝가리인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부다페스트 남쪽의 물류 창고가 있던 거리에 중국 상하이의 푸단대 캠퍼스 건설이 2년 전에 발표됐다. 18억 달러, 2조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데 헝가리 정부가 소요 자금의 80%를 중국으로부터 빌려와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원래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 건설이 예정됐었다. 2019년 봄 시장 선거에서 집권당 페데스(헝가리 시민연합)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커라초니 게르게이 시장은 대학교 건설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게르게이 시장은 인근의 도로 이름을 ‘위구르 순교자 거리, ’자유 홍콩 거리‘로 바꿨다. 중국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며 시민들과 함께 반대운동을 펼쳤다. 많은 헝가리 시민들도 중국 대학이 운영되면 이 곳에서 학문의 자유가 위축될 것으로 걱정한다. 이들은 2019년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중국이 탄압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총선을 의식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푸단대 캠퍼스 건설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최근 헝가리 대법원은 외국대학교 건설에 국제조약이 필요하기에 국민투표를 치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단 대학 건설은 진전이 없으나 포퓰리스트인 오르반 총리가 쉽사리 친중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중국은 과거 소련의 공산주의 압제하에 있던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게 투자를 당근으로 제시하며 접근했다. 2012년부터 중동부 유럽 및 발칸반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왔다. 그해 4월 중국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16+1’ 협력체를 발족했다. 중동부 유럽 등 EU 회원국 가운데 11개국과 발칸반도의 5개 나라가 이 협력체에 포함됐다. 발트 3국과 비세그라드 4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는 EU 회원국이다. 비EU 회원국은 발칸반도에 있는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다. 그리스가 2019년 4월 협력체에 가입하면서 ‘17+1’이 됐다. 협의체는 중국과 이들 간의 투자와 무역 촉진, 문화 교류 등이 목표다.
중국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온 일대일로 사업에서 아시아·중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투자를 약속했다. 여기에서 유럽이 빠질 리가 없었다. 육상 비단길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러시아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니스가 종점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일부 EU 회원국들은 중국의 이런 ‘갈라치기’ 전략을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과 리투아니아의 갈등이 이런 우려를 씻어줬다. 2021년 11월 중국은 리투아니아에 경제적 보복을 가했다. 당시 리투아니아는 타이완에 무역대표부를 개설했는데 중국은 이를 계기로 리투아니아 수입품 통관을 미뤘다. 홍콩의 민주화 탄압과 리투아니아 보복으로 중동부 유럽은 중국에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작년 3월에 발트 3국이 이 협력체에서 탈퇴했고, 친중 정책을 실행해왔던 체코도 탈퇴하지는 않았지만 이 협력체에 적극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협력체는 ‘14+1’로 겨우 명맥만 유지 중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와 서방의 국경선이 된 폴란드도 러시아의 침략을 강력규탄하면서, 러시아를 두둔하는 중국과 거리를 둬왔다.
이런 상황에서 헝가리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중국과 관계를 강화해왔다. 다른 중동부유럽 국가들이 중국과 소원해진 틈을 타 중국과 경제적 실리를 톡톡히 챙기려 한다.
대러시아 정책에서도 유사하다. EU 회원국 헝가리는 EU의 대러시아 제재에서도 계속해서 유예를 요구해왔고 자주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러시아와 육로 파이프라인으로 원유를 공급받는다며 대러시아 원유 수입금지를 유예받았다. EU는 지난달 중순에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되는 기금인 유럽평화기금(EPF) 규모를 35억 유로(약 5조원)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헝가리가 반대했다. 헝가리는 “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헝가리의 이런 정책을 이끌어온 지도자가 빅토르 오르반 총리다. 그는 1989년 봄 헝가리의 민주화 투쟁 때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명성을 날렸다. 2010년 총리가 된 후 작년 4연임에 성공해 EU 27개 회원국 지도자 가운데 최장수 재임을 기록 중이다.
그는 2014년부터 EU와 갈등을 빚어왔다. 친정부 인사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했고 헌법위원회를 만들어 행정부가 법관 임명에 개입해왔다. EU는 이런 조치가 회원국이 준수해야 할 삼권분립과 같은 법치주의를 파괴했다며 시정을 요구해왔으나 헝가리는 거부했다. 결국 행정부 역할을 하는 EU 집행위원회는 헝가리가 지원받을 EU예산 132억 유로, 약 19조여 원의 지급을 보류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정부패 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헝가리는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오르반 총리의 측근들이 국영기업에 포진해 있어 정실인사로 비판을 받았고, 부정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오르반 총리는 계속해서 집권하려고 반EU, 친러시아, 친중국 정책을 실행해왔다. 중국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EU의 약한 고리 헝가리와 관계를 강화해왔다. 유럽의회는 헝가리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EU 집행위원회에 요구했다. EU 회원국들은 반년씩 돌아가며 EU 순회의장국을 맡고 있는데, 헝가리는 내년 후반기 순회의장국이 된다. 그런데 유럽의회는 법치주의를 위반하고 친러, 친중 행보를 보여온 헝가리가 순회의장국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결의안을 지난 1일 통과시켰다. 법대로라면 EU가 헝가리를 강력하게 제재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서 쉽지 않다. 헝가리는 이를 노려 계속해서 EU를 분열시키는 정책을 실행 중이다. 앞으로 헝가리와 EU의 갈등이 계속될 듯하다.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셜록 홈즈 다시 읽기’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