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대책마련 미흡 지적도
#20대 사회초년생 마성우(가명) 씨는 최근 한 이동통신사로부터 466만 원의 통신비와 휴대전화 기기값이 연체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 통신사에서 안내한 번호는 마 씨가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마 씨는 통신사로부터 “혹시 고객님, 명의를 빌려주셨거나 신분증을 분실하셨거나 급한 자금이 필요해서 휴대전화 대출을 진행한 적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그제야 내구제 대출을 진행한 사실이 기억났다. 6개월 전 내구제 대출을 통해 휴대전화 개통만 하면 30만 원을 준다는 연락에 응했던 그는 그제야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30대 김준영(가명) 씨는 경남○○경찰서 형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된 김 씨는 형사 이름을 묻고 직접 경남○○경찰서로 직접 전화를 걸어 해당 형사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오히려 이 형사는 김 씨에게 김 씨 명의로 된 대포폰이 오히려 보이스피싱에 사용돼 관련 용의자로 의심돼 전화했다고 밝혔다. 그제야 김 씨는 내구제 대출을 한 사실을 털어놨고, 자신의 명의로 개통된 대포폰이 범행에 사용된 사실을 알게 됐다.
급전이 필요한 청년층을 노려 휴대전화를 개통하도록 한 뒤 휴대전화 구매대금, 통신요금, 소액결제대금까지 떠안게 하는 내구제 대출 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에서 내구제 대출 사기 근절을 위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사회적협동조합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가 지난해 11월 18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0.1%가 “내구제 대출이 불법(범죄)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런 내구제 대출에 빠질 위험에 있는 이들을 위해 소액생계비대출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다. 문제는 최근 이렇게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도 내구제 대출 유혹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았다는 A 씨는 “개인사정으로 당장 월세를 낼 돈이 부족해 소액생계비대출로 50만 원을 빌렸는데, 이후 부쩍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현금을 주겠다는 연락이 오더라”면서 “당장 수십만 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유혹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봐도 혹여나 이미 받은 소액생계비대출마저 영향이 있을까 싶어 신고도 못 한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의 대책 마련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내구제 대출에 대한 통합지원시스템을 마련해 피해자가 적극 신고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고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이 내구제 대출처럼 신종·변종 대출에 대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불법 금융행위를 무책임하게 대하고 있는 부분도 법·제도 개선을 통해 문제 해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