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직업병 진단일과 가장 가까운 사업장 평균임금”
여러 군데 직장을 거친 근로자가 퇴직한 뒤에 진폐(塵肺) 등 직업병 진단을 받아 산업재해 보상 보험료를 지급해야 할 때,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직업병 진단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의미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진폐증 진단을 받은 광부 갑(甲)과 을(乙)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를 산정할 때는 퇴직 전 마지막으로 근무한 사업장에서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 및 보험급여 차액 부지급 처분의 취소를 구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낸다”고 25일 밝혔다.
이 사건 원고 甲은 1979년 9월부터 1984년 3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A 광업소에서 채탄보조공으로 근무했다. 이후 1992년 10월 16~18일 사흘간 B 터널 신설 공사현장에서 착암공으로 일하던 중 업무상 사고로 퇴직했다. 2016년 12월 처음으로 진폐 진단 장해등급 13급 판정을 받았다.
또 다른 원고 乙은 1973년 6월부터 1989년 11월까지 16년 5개월간 C 탄광에서 굴진공으로 근무했다. 그 뒤 1992년 8월 4~19일 16일 동안은 D 터널 신설 공사현장에서 착암공으로 일하다가 역시 업무 도중 사고로 퇴사했다. 1997년 9월 최초로 진폐 진단 장해등급 3급이 인정됐다.
진폐란 산재보험법상 분진을 흡입해 폐에 생기는 섬유증식성 변화를 주된 증상으로 하는 질병을 말한다.
근로복지공단은 甲은 A 광업소를, 乙에게는 C 탄광을 평균임금 적용 사업장으로 각각 결정해 보험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甲은 B 터널 신설공사 건설사를, 乙은 D 터널 신설공사 건설사를 평균임금 적용 사업장으로 삼아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한다며 평균임금 정정 및 보험급여 차액을 청구했다. 공단 측은 두 사람의 마지막 근무지 근무일수가 짧다는 이유 등으로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 및 보험급여 차액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재판에선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이 확정된 산업재해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그 기준은 장기간 근무한 곳으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마지막 근무지로 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에서는 원고 측이 패소했다. 1심 법원은 “마지막 근무지에서 甲과 乙의 근무기간은 각각 3일과 16일로 너무 짧아 그 기간 두 사람이 수행한 업무와 진폐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2심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가 진폐증 확진을 받은 경우 확진 받은 때에서 가장 근접한 사업소에서 받은 임금을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판결 결과는 대법원에 가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사업장의 업무가 진폐증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원칙적으로 최종 사업장의 퇴직일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피고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진단 시점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받은 임금을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하도록 한다면, 동일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직업병 진단 직전 근무한 사업장이 어디인지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평균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사업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 후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을 받은 경우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를 산정할 때 종전에 근무했던 어느 사업장의 평균임금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최초로 명시적인 법리를 제시했다”고 판결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경우 평균임금 적용 사업장이 어디인지 근로복지공단의 실무 운영 및 하급심에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