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금리인하 ‘시장파괴’ 불러
당사자 참여…합리적 수준 찾아야
저신용자에게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였던 대부업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하자 이들의 금융 소외가 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리상승으로 조달 비용은 커졌지만, 대출금리는 최고금리에 묶여 경영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대부업이 개점휴업 상태로 있거나, 아예 문을 닫고 있다. 이른바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이 작동하고 있다.
이에 최고금리도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용하자는 시장금리연동 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최고금리 수준이 일정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기대한 효과가 잘 나타날지도 불확실할 뿐 아니라 심각한 자금 양극화 속에서 국가의 경제와 금융을 우선 생각해야 하는 정책당국과 만성적인 신용경색을 겪고 있는 저신용자 사이의 견해 차이가 커 적합한 최고금리 수준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최고금리 정책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바,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해결하려고 고민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남아공의 대부업은 오랫동안 엄격한 대부업법(The Usury Act)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하다가 1992년 12월 정부가 소액 단기 고리 대부업에 관해 예외 조항을 허용한 이후 급성장하였다. 전 지역에 걸쳐 소액 대부업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대부업은 하나의 큰 산업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초기에는 은행시스템에 접근되지 않는 수많은 서민에게 긍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 고용자들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가난하고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고금리 사금융에 접근할 수밖에 없게 되는 등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적절한 관리·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가 부족한 상태에서 금융 소외가 심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99년 6월 규제기관을 도입하여 소액 대부업자들을 등록시키고, 은행 우대 금리에 연동된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런데도 행정관리 비용이 매우 큰 소액 대부업체는 비용을 커버할 수 없어 폐업하거나 지하 불법 영업을 함에 따라 소액 대부 시장이 위축되면서 금융 소외로 발생하는 문제가 매우 커졌다.
당시 세계은행 산하 연구기관인 CGAP(The Consultative Group to Assist the Poor)는 금융 소외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금리 수준 그자체보다도 당장 대출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남아공 최고금리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에 2005년 남아공 정부는 국가 신용법(National Credit Act)을 제정하면서 최고금리 제도를 개선하였다. 2007년부터 상무부는 다양한 금융전문가와 업계 사람들로 구성된 NCR(National Credit Regulators)과의 협의를 통하여 최고금리를 결정하고 있다.
우리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레포(Repo) 금리에 연동하면서도 금융 분야의 전문가, 이해 당사자인 자금수급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소액 대부의 원가분석과 시장 상황을 고려하여 일정 기간마다 금융상품별로 차별적인 가산금리를 덧붙여 최고금리 수준을 정하고 있다.
2023년 상반기 현재 남아공의 최고금리는 연이율로 주택담보대출은 15.5%, 무담보대출 24.0%이며, 첫 번째 단기 소액 대출은 60.0%(두 번째부터는 36%) 등이다. 그뿐만 아니라 NCR은 금융 소외 해소를 위한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시장 규제 해소를 위해 다양한 기능과 역할도 하고 있다.
남아공의 최고금리 제도는 중장기적으로도 남아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 전체에 금융 소외 해소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고 있으며, 마이크로 파이낸싱의 새로운 모델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비록 우리와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서 큰 차이가 있는 먼 나라 제도이지만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과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해 최고금리를 결정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최고금리는 일몰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정치 논리가 작용하면서 일방적으로 인하되어만 왔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는 우리 나름의 최고금리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남아공의 NCR을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최고금리위원회’도 생각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이해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