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워크 자본주의’ 논쟁 속 정치적 ‘뜨거운 감자’ 돼
블랙록, 보수 진영 반발에 잃은 자산만 40억 달러
좌파는 대처 충분치 않다는 불만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핑크 CEO는 전날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참석해 “나는 더는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ESG가) 완전히 극좌와 극우에 의해 무기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ESG 이슈에 끼어드는 것이 꺼려진다”고 덧붙였다.
ESG는 기업활동에 있어서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의 요소를 측정하는 기업성과지표를 말한다. 사회적 책임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주목받으면서 월가 중심으로 이를 투자전략에 접목하는 운용사들이 늘었다. 특히 핑크는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주목하며 투자전략과 경영자 리더십을 평가할 때 반영하는 등 ESG 투자 확산에 공헌했다.
하지만 ESG가 최근 미국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문제가 됐다. ESG의 개념이 인종, 젠더, 지역 등 사회적 이슈로 번지고, 공화당을 중심으로 이른바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 논쟁 중심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워크 자본주의는 ESG 투자 또는 경영에 적극적인 금융인과 기업인을 ‘깨어 있는 척’한다고 비꼬는 표현이다.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금융사들이나 기업들이 ESG를 구실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편파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유력 대통령 선거 후보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플로리다 퇴직연금의 ESG 요소 반영 금지 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ESG 투자에 적극적인 블랙록에 위탁해 운용하던 20억 달러(약 2조6000억 원)의 자산을 회수했다.
텍사스를 비롯한 공화당 성향의 다른 주(州)도 ESG 투자가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반발하며 블랙록에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 같은 ‘워크 자본주의’ 후폭풍으로 블랙록이 잃은 운용자산만 지난해 총 40억 달러에 이른다.
이미 핑크는 올해 3월 공개한 연례 주주 서한에서 예년과 달리 ESG라는 용어 자체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중시해왔던 기후문제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블랙록이 투자 전략과 관련해 기후 문제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블랙록이 운용자산이 9조2000억 달러(약 1경1969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운용사라는 점에서 핑크의 이번 발언이 투자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타격을 받은 것은 블랙록뿐만이 아니다. 보험사 12곳이 지난달 ‘넷제로 보험 연합(NZIA)’ 탈퇴를 선언했다. 공화당 성향의 23개 주 정부 검찰이 지난달 15일 이들의 ESG 행보가 반(反)독점법에 저촉된다며 법적 조치를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기후대책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좌파에서는 운용사의 대처가 불충분하다며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핑크 CEO는 이날 “ESG 용어를 서한에서 쓰지 않았다고 해서 블랙록의 입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탈탄소화, 기업 지배구조 및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회사들과 계속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