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파이브가이즈는 서울 강남에서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것인데요.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본부장이 2년여 간의 작업 끝에 들여온 미국 유명 버거로 입소문이 난 덕분인지, 전날(25일) 밤 11시부터 오픈런이 시작됐습니다. 이날 오전에만 700여 명의 손님이 몰리면서 매장 앞은 첫날부터 인산인해였습니다.
파이브가이즈가 자리 잡은 곳은 SPC의 쉐이크쉑, BHC의 슈퍼두퍼 등 미국 유명 버거 프랜차이즈들이 나란히 위치한 강남대로입니다. 인근 삼성역 부근에는 고든램지 스트리트 버거까지 있죠. 파이브가이즈의 등장으로 ‘버거 스트리트’의 수제 버거 전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파이브가이즈의 버거류(패티가 1개인 리틀 버거 제외)는 단품 1만3400~1만7400원 사이로 책정됐습니다. 감자튀김은 스몰 6900원, 라지 1만900원이고, 무한 리필이 가능한 탄산음료는 3900원입니다. 세트 메뉴는 따로 없는데요. 버거와 감자튀김, 탄산음료를 모두 주문했을 때 최저가는 2만4000원 선입니다. 영업 시작 첫날 파이브가이즈에 방문했다는 한 누리꾼이 올린 인증 사진에 따르면, 그는 베이컨 치즈버거와 감자튀김, 셰이크를 주문해 총 3만3200원을 결제했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젠 버거가 치킨보다 비싸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쉐이크쉑의 버거 단품 가격은 6800~1만5400원 수준이고, 감자튀김은 4800원, 셰이크는 6500원입니다. 슈퍼두퍼의 버거 단품도 8900~1만5900원으로 파이브가이즈보다 저렴한 수준이고, 기본 감자튀김은 5900원, 밀크셰이크는 6900원이죠.
파이브가이즈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명 버거 브랜드에서 버거 단품이 2만 원에 육박하는 상황인데요. 수제 버거의 인기로, 버거는 더 이상 싸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는 거리가 먼 음식이 됐습니다. 버거의 가격이 연일 높아지는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물가가 상승할수록, 경기가 어려울수록 소비 형태는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소용량, 소포장 상품 소비를 늘리는 한편, 초고가 제품 구입에 서슴없이 지출하는 행태가 두드러진다는 겁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월 ‘국내 5대 소비 분화 현상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극도로 비용을 줄이는 소비 형태와 비용 절감을 바탕으로 초고가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소비 양상이 양립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고자 꼭 필요한 물품만 소량으로 구입하고, 공동구매, 중고제품 구매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난해 10월 ‘중고나라’ 앱 설치 건수는 같은 해 5월 대비 20% 증가했고, 같은 기간 ‘공구마켓’ 앱 설치 건수도 15% 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외 유명 브랜드 소비 증가율이 전체 소비 증가율을 웃도는 등 ‘플렉스’(flex) 소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절약한 소비를 바탕으로 확보한 자금을 초고가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사용한다는 겁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욜로’(YOLO), 플렉스와 같은 과시적 소비가 유행했다면 이제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짠테크’(짜다+재테크의 합성어) 열풍이 동시에 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실로 절약 노하우를 공유하는 ‘거지방’, 하루 지출 0원을 목표로 삼는 ‘무지출 챌린지’가 M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기도 했죠.
경기 침체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절약이 트렌드가 돼 가성비를 추구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몰 럭셔리 트렌드와 함께 보복 소비 열풍이 불고 있는 겁니다.
초고가 버거의 등장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은 ‘2023년 주목할 외식 트렌드’ 키워드로 가장 먼저 ‘양극화’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소득 격차에 따른 소비 양극화뿐 아니라, 한 사람이 짠테크와 플렉스 성향을 동시에 갖는 게 특징이라는 설명입니다. 연구원은 “불황으로 초저가 상품과 가성비에 집착하면서도 외식의 횟수는 줄이되 한 번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는 가치와 함께 프리미엄 외식을 지속하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높은 가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마케팅이 될 수 있습니다. ‘헉’ 소리가 나는 가격으로 최고 품질의 상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겁니다.
실로 올해 1월 롯데가 아시아 최초로 입점시킨 고든램지버거는 남다른 가격을 자랑합니다. 버거 메뉴 중에서도 가장 비싼 ‘1966버거’는 무려 14만 원에 달하는데요. 높은 가격이지만, 트러플 버섯과 투플러스 한우 등 최고급 재료만 선별했다는 점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고든 램지는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덤이죠.
가격이 오르는 데도 과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수요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소셜미디어(SNS)까지 진화하며 베블런 효과를 강조하게 됐는데요. 매년 여름철이면 호텔의 망고 빙수가 화제를 빚기도 합니다. 신라호텔의 애플망고 빙수는 매년 가격이 오르는데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죠. 빙수 한 그릇에 약 10만 원을 써야 하지만, 호텔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느끼고 SNS에 인증 사진을 남기는 ‘체험 값’으로 여긴다면 나쁘지 않은 소비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초고가 상품과 함께 초저가 상품도 잘 팔립니다. GS25는 지난달 세 차례에 걸쳐 SK텔레콤, 카카오페이 등과 제휴해 정가 4500~4900원인 ‘혜자로운 집밥’ 도시락 2종을 350∼470원대 가격으로 3만 개 한정 판매했습니다. 이 도시락은 첫 회인 10일 40분 만에 완판됐고, 20일과 30일에도 오전에 동이 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29일부터 신메뉴 ‘당당 순살치킨 트윈버거’를 출시합니다. 1팩에 2입 구성으로, 4990원에 판매될 예정인데요. 이는 앞서 당당치킨을 비롯한 ‘당당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끈 데 따라 기획됐습니다. 홈플러스는 치킨 가격 인상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해 6월 ‘당당치킨’을 출시, 약 7개월 만에 누적 판매 200만 마리를 돌파한 바 있습니다. 당당치킨 9종으로만 145억 원가량의 판매고를 올렸죠. 치킨값 인상 행렬 속 ‘가성비’를 경쟁력으로 인정받으면서 일부 매장에서는 개점 전부터 손님들이 몰리는 오픈런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초고가, 초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중저가 상품’은 ‘애매하다’는 평과 함께 위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실로 한국 맥도날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4.6% 늘어 9950억 원을 기록했지만, 영업 손실은 278억 원에 육박했습니다. 중저가 브랜드의 매력이 소비자에게 두드러지지 못하는 모양새죠.
파이브가이즈를 들여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강남역 (인근)에 있는 버거를 여러 번 먹어봤는데 솔직히 경쟁 상대로 느껴지는 곳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햄버거의 품질에 있다”며 “(미국)본사를 찾아간 게 2년 전인데, 2년 후에야 오픈할 수 있었던 건 완벽한 감자를 국내에서 직접 재배하는 데 1년 반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타사들은 냉동 감자를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파이브가이즈는) 완전히 차별화된 제품”이라며 차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파이브가이즈 강남이 영업을 개시한 지 3일째인 만큼,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지난해 5월 대우산업개발 자회사 이안GT가 들여온 ‘굿스터프이터리’가 강남에 1호점을 오픈한지 5개월 만에 철수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죠.
굿스터프이터리는 단골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먹던 버거를 ‘프레즈 오바마 버거’로 정식 메뉴화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브랜드인데요. 이안GT는 굿스터프이터리를 론칭하면서 매장 내부에 설치된 스마트팜 ‘GT팜’으로 갓 재배한 채소를 당일에 버거나 샐러드 제조에 활용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업계에서는 쉐이크쉑과 비슷한 가격대지만, 매장 규모가 작고 맛, 분위기 등에서도 차별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파이브가이즈는 높은 가격과 함께 맛과 퀄리티, 미국 현지의 오리지널리티, 다양한 커스터마이제이션을 강점으로 내세웠습니다. 국내에 상륙한 파이브가이즈의 차별화 전략이 통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파이브가이즈의 론칭이 국내 버거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집니다.